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판결이 내려졌다. 1953년 ‘낙태죄’가 형법에 규정된 뒤로 ‘낙태죄’는 계속해서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돼왔고 대상이었던 여성들은 ‘낙태죄 폐지’라는 헌재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나흘 뒤, 4월 15일 정의당 이정미의원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현행 형법의 ‘낙태죄’를 폐지하고,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었으며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지만 14주부터 22주 이내에는 ‘임신 유지나 양육이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넣었다. 임신 22주부터는 심각한 모체 건강상 이유를 제외하고는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했다. 이 법안은 발의되자마자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법안이 “여전히 임신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라며 비판했으며 ‘태아생명권 대 여성결정권’이 아닌 ‘성과 재생산의 권리보장’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47년만에 낙태 논쟁 들썩
 
 한국에서 겪는 혼란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47년 만에 낙태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낙태논쟁이 미국전역에 사회적·이념적 분열을 낳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대선 주자들이 가세하며 2020년 대선 이슈로도 확대되고 있다. 공화당이 지지하는 ‘심장 박동법’ 즉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 같은 경우, 대다수 여성이 임신 6주 이전까지는 임신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효성 자체도 의심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판결들이 힘을 얻기도 한다.

 대체로 위의 판결요지는 ‘여성의 사생활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더 무게를 지니는지 혹은 지니지 못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낙태의 선택권 옹호는 태아의 생명권과의 상충되면서 지속적인 갈등 구도로 대립한다. 여성의 임신중절권리가 ‘사생활에 대한 권리’라는 한계적인 권리로 여겨졌기 ‘사생활에 대한 침해가 여성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태아의 생명권’의 경중을 비교하는 식의 논의가 이어진다.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법이 생기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여성이 재생산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상황들이 지속된다. 안전한 수술을 보장해야하는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하거나, 수술 전 상담에서 건강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에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수술대기 기간을 길게 잡거나 공공보험에서 임신중절 항목을 제외하여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제한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사유’ 추가 우려
 
 지속되는 갈등 구도와 권리의 부재라는 관점으로 정의당의 기본형법·모자보건법 발의 개정안을 접근해보자. 발의내용은 임신 14주를 경과한 임신중지의 경우 태아의 건강, 성폭력, 근친상간, 사회·경제적 곤란함이나 임신의 유지로 인한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또 다시 증명, 그마저도 임신 22주 이후에는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외에는 임신 당사자가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쳐온 개인적,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다. 또한 발의된 내용 중 제한적 허용조건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른 재생산 권리의 보장을 제약한다는 우려가 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개인의 곤란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 사회·경제적 여건의 보장이 필요하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권과 생명권 논쟁의 한계를 뛰어넘는 재생산 주체로서의 권리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도출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 이후를 만들어갈 담론이 활성화되지 못한 한국사회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아이를 낳게 되면 독박육아와 복직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인 상황, 아이를 키우는 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권리의 본질적인 의미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 형법조항의 삭제로 끝이 나는 문제가 아니다. 주차별로 단계를 나눠 여성을 처벌하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없다. ‘낙태죄’ 폐지 운동의 실내용이 무엇이 돼야 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낙태죄’를 만들어낸 사회의 다양한 성차별적 구조들을 밝혀나가야 한다.
소영<페미니즘 동아리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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