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업복을 걸쳤다. 평상시 작업복인 노동조합 투쟁조끼가 아니라 양복이었다. 투쟁 조끼를 입고는 작업장에 못 들어갈게 뻔해서다. 화이트칼라 냄새를 풍기면 들어가지 않겠냐는 기대를 했다.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작업장 안에 못 들어갔다. 그 작업장은 지난 13일 열린 포스코 주주 총회장(주총)이었다. 난 포스코 주식 1주를 가진 소액주주로서 주총 참여장과 신분까지 확인해줬다. 하지만 내 얼굴을 알아본 포스코 경비 책임자는 경비들을 동원해 주총장 진입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해 사지를 들어 강제로 끌어냈다. 지난해 주총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 때문이었으리라.



비정규직 주주의 주총 참여 막은 대기업

 난 지난해 포스코 주총장에 용케 진입했다. 당시 발언권을 얻어 “이사들의 연봉을 낮추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조합 탄압을 중단하라”고 주문했다. 발언이 끝나자 경비들이 사지를 들어 강제로 끌어냈다. 그래선지 포스코가 올해는 대책을 단단히 세운 것이다. 그래도 양복을 입어선지 주총장인 포스코 센터 건물 내부로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주총 참여장을 들고도 건물 입구에서 봉쇄당했다.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노동자 15명은 3년 전부터 이른바 `정규직화 소송’을 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고등법원에서 2년째 선고를 하지 않고 계류 중이다. 포스코가 선고를 3번이나 연기 신청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시간을 끄는 이유는 뻔하다. 판결이 나기 전에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정규직화 소송을 취하토록 하기 위해서다. 애초 16명이 시작했다가 최근에 1명이 소송을 취하했다. 노조 간부로 해고됐다가 복직한 그는 포스코에 다니는 친인척까지 내세워 압박하자 결국 사표를 쓰고 소송을 취하했다. 포스코는 다른 15명에게도 그걸 바라는 것이다. 정규직화 판결이 나오면? 그 때는 15명뿐만 아니라 1만5000명이 넘는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을 요구하고 나설 것을 포스코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취지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이어왔다. 대법원은 최근 현대자동차·남해화학 뿐만 아니라, 현대미포조선·한국지엠자동차·금호타이어·동부대우전자서비스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묵시적 근로관계 또는 불법파견으로 판결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소송은 포스코 뿐만 아니라 금호타이어·기아자동차·현대제철 사내하청노동자들도 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김재기 열사는 도급화(사내하청)를 반대하며 분신까지 했다. 모두 대공장이다. 고용노동부 고용고시에 따르면 2014년 3월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 소속 노동자 중 37%인 162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이중 사내하청과 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87만 명으로 20%에 달한다. 특히 10대 재벌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이 36만 명으로 30%에 이른다. 그런데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538조 원에 이른다. 포스코가 42조 원이고 현대차그룹은 100조 원이 넘는다. 사내유보금은 이윤에서 주주에게 환원하고 남은 현금성 자산이다. 이러한 10대 재벌 사내유보금 중 0.8%만 써도 43만 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재벌 유보금 1% 쓰면 정규직 100% 가능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말하고 있는 정부가 우선 할 일은 자명하다. 대법원 판결에도 처벌하지 않고 있는 불법파견 사용 사용주를 지금부터라도 처벌하는 것이다. 불법파견 사용 사용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개별 건으로 처리하면 1만5000명을 넘는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에 대해 각각 4만5000년 이하의 징역과 450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한다. 이 정도 정부가 처벌한다면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나? 29만 원대에 산 포스코 주식이 어느덧 25만 원대로 떨어졌다. 속이 시리다. 내년 포스코 주총엔 어떤 작업복을 걸쳐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 없기를.


권오산<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책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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