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후 1년, 우리는 여전히 변함없이 세월호를 기억한다. 간절한 기도와 바람 속에 생존자를 기다리던 그 때처럼 기억과 다짐 속에 변화를 기다린다. 우리는 정말로 1년 전과 똑같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문득 일찍이 문화제로 전락해버린 촛불 집회가 떠오른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촛불을 들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대적인 추모 물결이 진행된 참사 1년째를 맞은 16일로부터 단 하루가 지난 17일, 일상을 가득 채운 노란 물결이 손쉽게 기억을 다짐하는 노란 리본 모형으로 대체되는 순간 자꾸 사라진 촛불이 생각났다. 유일한 무기였던 촛불의 무기력한 힘 앞에 수많은 촛불들이 사라졌다.



세월의 기억이 삶을 구분해

 그러나 촛불의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변화도 없는 듯 보이는 가운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달라졌다. 조심스레 촛불을 들던 손이 이제는 망설임 없이 노란 리본을 향한다. 기억을 다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촛불에서 세월로 이어지는 기억이 만들어낸 변화를 몸소 경험하는 중이다. 다만 그들은 아직 그 경험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세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도대체 세월을 기억하는 의미가 당신 자신에게 무엇이냐고. 진상규명과 보상 같은 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그들의 경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질문 몇 마디로 세월을 기억하는 이들의 삶에 각인된 경험을 손쉽게 끄집어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들 자신의 경험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들, 우리가 일명 예술가와 지식인라고 부르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이미 세월 이전부터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 다양한 의미들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이다. 대중마저 이 거대한 사건 앞에서 자신의 삶 한 부분을 양보하면서까지 나름의 놀라운 경험을 하는 와중에 하물며 일상적 경험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더 놀라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예술가와 지식인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말하고, 쓰고, 그려낸 세월의 경험은 대중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기대한 세월의 기억과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나름의 진지함으로 세월을 이야기하는 어느 작가가 결국 풍자적인 작품으로 시대를 조롱하는 게 최선인 모습이나 그들의 침묵이 세월호 이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생각하면 이런 결과가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학문과 예술이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왜 그토록 우리 삶에서 의미 있다고 말해왔는지를 증명할 절호의 기회를 다시 한 번 외면했다는 점이다.



예술가·지식인들에 기억의 바통

 그 사이 대중들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경험의 한 가운데로 내몰렸다. 사라진 촛불이 촛불을 들기 이전과 그 이후로 삶을 구분했듯 세월의 기억이 그들의 삶을 구분했다. 개인의 삶에 경험으로 각인된 세월은 그와 유사한 다른 사건들로 그 개인을 인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촛불이 세월로 자신을 안내했듯 세월의 기억은 밀양과 강정 그리고 기륭을 비롯한 또 다른 세월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왔다. 거대한 사건 이후 무엇이 바뀌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게 대중들 자신의 일상에서 진행되었다. 변화된 사람들은 단식을 하고, 노숙을 하고, 삭발을 하고, 기꺼이 자기 삶의 부분을 세월의 기억에 양보했다. 세월호 이후 1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달라졌다.

 그러나 대중이 온몸으로 보여준 이 변화는 생각만큼 의미 있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변화는 언론에서 주목할 만한 것도 아니었거니와 언론에서 주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거대한 사건과 더불어 진행된 거대한 변화가 과소평가 되는 사이 변화의 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침묵 앞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주목하지 않은 경험이 주목할 필요가 없는 경험이 되면서 경험의 당사자조차 그 의미를 마주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일찍이 촛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세월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따라서 지금 세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들이 이미 겪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경험을 자신들에게 다시 돌려줄 사람들이다. 시대는 자신의 책무를 뒤로하고 슬그머니 대중 뒤로 숨어버린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대중의 기억을 이어줄 조력자라로서 예술가와 지식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중은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해 기억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제 문제는 예술가와 지식인이다. 자신들에게 넘어온 기억의 바통을 받아들 것인가? 아니면 다시 외면할 것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 맞는 종류의 책임에 직면해 있다.

박현진<대안공간RGA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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