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9월호 표지에는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사진과 함께 “여자들이 나쁜 남자 좋아한다고? 이게 진짜 나쁜 남자다. 좋아 죽겠지?”라는 멘트가 들어가 있다. 표지를 보고서 든 느낌은 공포라기보다 가당치않은 훈계를 들은 기분이었다. 나쁜 남자 좋아하다가 험한 꼴 당할 수 있으니 평범한 남자에 만족하라는 얘기니 말이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소위 ‘나쁜 남자’는 야망을 향해 돌진하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는데, ‘맥심’은 여자들을 나쁜 남자와 나쁜 놈(범죄자)도 구분하지 못하는 모자란 존재로 여기는듯하다. 사실 ‘맥심’의 진짜 메시지는 나쁜 남자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따지는’ 여자들에 대한 경고이며 평범한 남자들을 인정해 달라는 투정이다.



여성들의 요구는 불편한가?

 곧바로 예전 전에 읽은 칼럼이 떠올랐다. 여자들에게 슈퍼우먼이 될 것을 요구하던 남자들이 이제는 그간의 업보를 갚아야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중년의 남성인데 본인이 젊었을 때만해도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을 얻으면 선자리가 줄줄이 늘어설 정도였지만, 요즘에는 너무 달라져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남자들도 멋진 몸을 만들어야 하고 패션감각도 있어야 하며 요리도 잘 하고 유머와 박식함도 고루 갖춰야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그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예쁘고 살림 잘하고 애도 잘 키우고 돈도 잘 벌어오길 바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기에, 남성들에게 각종 덕목이 요구되는 현실을 마냥 불평할 수만은 없겠다고 했다.

 대단히 염치 있는 태도이자 이러한 역지사지의 사고방식은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비판적 성찰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여자들이 예전과 다르게 따지는 게 많아져서 남자들 삶이 고단해졌다고 불평하는 부류도 있다. 마치 ‘맥심’처럼 말이다. 매력남이 되기 위한 기준이 너무 높다. 한마디로 여자들이 눈만 높아져서 연애하고 결혼하기 힘든 세상이니, 평범한 남자들을 인정하라고 투정한다.

 이는 시대착오적이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전형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이유는 평등한 남녀관계를 요구하는 여자를 못마땅해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뿐이던 과거와 오늘날의 남녀관계는 달라져야 마땅하다. 여성들이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사회경제적 지위를 성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성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여성 스스로 바라는 남성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성들이 남성의 요구에 맞추기만 하고 자기요구를 하지 않던 과거와 비교하며 요즘 여자들이 까다로워져 문제라 여긴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이유는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청년실업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들이 욕심을 덜 부리면 연애와 결혼이 쉬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경제가 위기에 빠져 고용이 늘지 않고,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만 창궐하다보니 청년들이 안정적 직장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취업준비를 하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남녀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자들의 눈높이 때문이 아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수입이 보장되는 삶이 물 건너가고 있으니 연애와 결혼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공적 안전망 부재, 개인기로 극복?

 그리고 개인이 각종 덕목을 쌓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작용하는 문제다. 공적인 사회안전망이 부재하다보니 오로지 개인들이 자신의 힘이나 가족끼리 뭉쳐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연인이 되는 것에도, 좋은 직장인이 되는 것에도,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도 숨 막힐 정도로 많은 덕목을 갖춰야 한다. 몸짱 얼짱에 요리도 잘 하고 유머도 있고 능력도 있는 남자가 되어야 연애할 수 있는 것처럼, 해외연수에 봉사활동에 인턴에 영어 점수에 온갖 스펙 있어야 취업할 수 있고,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먹이고 기르고 조기교육 시키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남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는 시대다. 그리고 이것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적용되는 룰이며, 여자들이 되바라진 욕망을 가지게 되어서 생겨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사태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맥심’처럼 번지수 잘못 찾아가 애먼 여성에게 화풀이하는 게 아니다. 여자들이 고분고분해지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못해 판타지 영화에 가까운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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