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국정교과서에 반대해 집회에 나선 시민들을 IS와 같다고 비난했다. 또한 집회에서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민주노총 가맹단위를 줄줄이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어려운 이유는 과격시위를 일삼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세력들 때문이라 비난하며 국가정책에 반기를 들고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을 불법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권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었으나 변변한 성과는 없고, 갈수록 경제가 악화될 전망이라 정부를 향한 비난과 불만을 사전에 무마시키기 위해 강공을 퍼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민의 목소리를 통제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집권하던 시절과 오버랩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70년대는 노동조합의 ‘노’자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독재가 서슬 퍼랬다. 그럼에도 어두운 시기를 송곳처럼 뚫고 나온 이들은 바로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봉재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설립한 청계피복노조를 비롯해 동일방직 노조, 콘트롤데이타 노조, YH무역 노조 등이 설립되었다. 회사와 국가의 갖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세우고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특히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YH 무역은 10명 남짓한 노동자들을 데리고 시작한 가발공장이었는데 수년 사이에 수천 명을 고용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급격한 성장의 비결은 바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값싼 비용에 장시간 일을 시키면서 벌어들인 것이었다. 반대로 회사가 빚더미에 앉게 된 이유는 회장과 친척들의 전횡 때문이었다.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고 여성노동자들은 폐업에 맞서는 투쟁을 벌였다. 최후의 항쟁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사 점거농성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는 묵살당하고 빨갱이들이 배후세력에 있다고 호도하며 불법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신민당사에 무장경찰이 투입됐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YH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폭압적인 독재정권의 실체가 드러났다.

 70년대 YH무역과 같은 여성노동자들은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역군이었다. 노동집약적 경공업인 섬유와 전자조립 산업체들이 어린여성들을 저렴한 노동력으로 대거 활용해 경제가 굴러가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가족생계의 기둥이기도 했다.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던 그녀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싶지만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위해, 그리고 생계가 막막한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간 것이다. 그러나 국가경제와 가족생계의 기둥인 그녀들은 그만큼의 대접을 받기는커녕 ‘공순이’라고 멸시 받았다. 회사는 공순이들 주제에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공순이니까 값싸게 부리고, 공순이니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통념이 당시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와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고, 그녀들이 부조리한 사회를 떠받치도록 강요당하는 것을 거부하자 독재를 무너뜨리는 힘을 발휘했다. 여성노동자들의 소박하지만 정당한 요구가 부조리한 사회를 찌르는 비수가 된 것이다.

 오늘날 여성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에 있을까. 한국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앞으로도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출산율이 낮아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주요 과제인 상황이다. 그래서 국가의 중요 경제정책 중 하나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서비스 정책을 통해 아동과 노인 병자와 장애인 등을 지원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정한 것이고, 사회서비스를 통해 가사양육을 지원하지만 국가의 책임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화된 방식으로 추진되어 경제력에 따라 서비스를 받게 된다. 결국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하던 일을 유지하면서 직장에서 값싸게 일하도록 장려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송곳’ 같은 여성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마트노동자, 청소노동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어두운 시대를 뚫고 나가는 송곳 같은 여성들이 많아지도록 응원하고 기대해 본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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