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의 공포는 대단했다. 이번 추석에 모인 우리 가족의 이야기 주제는 단연 지진이었다. 포항에 살고 있는 친척이 방문하면서 당시 생생했던 공포를 들을 수 있었고 광주에서도 지진 여파로 흔들림을 느꼈기 때문에 생생한 경험담이 오고 갔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에서 안전한 국가가 아니라는 걱정과 국가의 민첩하지 못한 대처에 대한 불만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진으로 확인한 무능한 정부·언론

 가족들은 `이미 세월호 사태를 경험한 국가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수 있느냐’ `올 여름 폭염이 지속될 때 오전 11시만 되면 울리던 그 핸드폰 사이렌이 이번에도 당연히 울렸어야 했던 것이 아니냐’면서 누구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이런 국민들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석기간 동안 뉴스는 경주 지진 후 여진이 300 차례 이상 지속되고 있다는 단신만 전했을 뿐 정작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경주 인근의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여부나 지진이 났을 때 어떻게 대피하고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해선 친절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지진이 일어나기 얼마 전 `도시계획과 안전’에 관련한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성단체 활동을 하고 있어서인지 내 관심사는 재난 상황에서도 젠더가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결과적으로 정책에서 성인지(gender-sensitive)를 반영하는 것이다. 내가 “사실 나를 비롯한 여성들은 이제까지 살면서 재난이나 전쟁을 염두 한 대응 훈련이나 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지진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막말로 높은 데로 가야하는지 어디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남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군대 경험을 했고 민방위 훈련도 받으니 잘 알 것 같다. 우리는 남자들만 믿고 따라가면 되는 거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회의에 참여한 남성들이 하나같이 “여자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른다”고 답해서 웃었지만 슬펐던 기억이 난다.



불균형한 피해…재난에 취약한 여성들

 거의 해마다 인도양 주변국을 강타한 아시아 쓰나미(지진해일)로 실종·사망한 희생자 중 여성 희생자가 남성보다 훨씬 더 많다고 보고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쓰나미가 여자들만 골라 덮친 것은 아닐 것이고 우연이라 하기에도 피해 국가 사정이 비슷해서 통계가 아니라고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제구호기구인 옥스팜은 `여성은 해일 피해의 와중에서 자식이나 부모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생존하기 어려웠으며, 해일을 피해 언덕으로 대피하는 능력이나 수영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일부 마을에서는 사망자 중 최대 80%가 여성인 곳도 있어서 이 불균형이 향후 사회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재난에도 성(gender)이 있다는 말이다.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 사건들은 하나같이 국가의 무능이 드러난 계기가 되었고 그 무능의 결과로 입은 국민들의 피해는 지금도 아물지 않은 채 순환되고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이미 뼈아픈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이제라도 국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안전·재난 대응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켜야 한다. 단, 기존에 형식적이고 성별, 계층, 연령 등을 고려하지 않은 뭉뚱거린 교육은 곤란하다.

백희정<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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