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에 기록될 한 장면이 될 텐데 함께 가지 않을래? 4·19혁명 이후 다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일이야. 일생에서 한 번밖에 없는 일일수도 있어.” 아빠인 필자의 제안을 중 1학년과 초등 5학년인 아들, 딸이 받아들였다. 지난 11월12일 광화문에서 100만의 박근혜 하야 촛불로 함께 했다. 그 100만 촛불은 19일에도 멈추지 않았다. 5·18민주광장은 10만의 횃불로 타올라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국민의 함성에 놀란 검찰조차 박근혜를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의 피의자와 공동정범으로 입건했다. 박근혜가 반격을 시작했지만 들불처럼 타오른 국민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박근혜 퇴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물러나면 끝인가? 그 다음은 촛불을 끄고 정치권이 알아서 하게 지켜볼 일인가? 역사를 비추어볼 일이다.



4·19 혁명과 87년 항쟁 너머

 4·19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돌아보자. 4·19는 국민 항쟁을 통해 이승만을 하야시키고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 승리하는 듯 했지만 박정희 쿠데타로 군사독재가 들어서게 됐다. 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야권이 분열하며 전두환 후계자인 노태우가 집권했다. 당시 6월 항쟁 지도부인 국민운동본부는 직선제 쟁취 이후 불출된 7,8,9 노동자 대투쟁을 외면하고 만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양 김에 의탁한 채,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길에서 멈추고 만 것이다. 혁명의 파고에서 정치권에 그 권한을 내맡기고 항쟁의 주체가 물러났을 때, 그 한계를 지난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 체제 자체가 귀신이 들려있다.” 신학생시국연석회의 시국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여종 박근혜”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직시하고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재벌을 통해 수백억 원을 사적 이익을 취할 때 재벌은 수십조 원의 이익을 취했다. 박근혜 게이트 의혹 중 하나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밀어준 결과를 보자. 합병 결과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가치가 2조1000억 원에서 5900억 원이란 손해를 봤다. 반면 삼성 이재용부회장은 8조 원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지분 4%에 대해 간접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고 합병비율에 따라 7900억 원의 실이익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삼성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출연했을 뿐이다. 늘 마름보다는 주인이 많이 챙기는 법이다. 비선실세 농단은 청와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줌도 안되는 지분으로 대기업을 쥐락펴락하는 하는 재벌 총수에게도 있다. 재벌왕국을 타파하지 않은 채 박근혜란 여종만 바꾼다면 재벌은 또 다른 종을 내세워 비정상적인 축적을 계속할 것이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도 재벌은 비대하게 성장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재벌체제를 놔둔 채 우리 삶을 바꿀 수 없다.

 100만 촛불로 들불처럼 번진 도화선 중 하나는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자대학교 부정 학점과 부정 입학 문제가 폭로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만큼 민감한 관심사도 없다. 분노하지 않을 학생과 학부모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최순실이 처벌받고 정유라의 입학이 취소되면 끝날 문제인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화 된 대학입시체계를 나두고 입시지옥 문제와 야간자율학습과 학원교습으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체제와 제도 넘어 다른 삶을 상상하자!

 재벌 문제도, 입시지옥 문제도 어느 정당, 어느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다른 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 내맡기고 의탁해서는 해결 할 수 없다. 박근혜가 버티며 촛불이 장기화되고 있다.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풍자와 해학으로 풍성하게 하는 것도 좋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눠 가보자. 재벌체제를 어떻게 바꿀지, 교육체계를 어떻게 바꿀지, 농업을 어떻게 살릴지, 참정권을 어떻게 확대할지. 청년실업과 노인복지를 어떻게 세울지, 광장의 주인들이 직접 나서서 열린 광장으로 만들고 맘껏 애기하고 상상하자. “금지된 것을 금지하고 우리의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맡기자.” 프랑스 6·8혁명의 경구다. 정권교체를 넘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바꾸는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자. 촛불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대한민국을 톡톡.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책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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