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물 마시는 일이다.
 죽도록 아프고 난 뒤,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머리맡에 생수병이나 물컵을 두고 잔다.
 오늘 새벽에 자리끼가 없어서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쏟아지는 물을 받으며, 참 편리한 세상에 복 받으며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식수가 귀해 물지게로 져다가 물 항아리에 붓던 고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애써 우리 집에 우물을 파기 전에는 공동우물이나 먼저 우물을 판 이웃집에서 물을 길러다 먹어야 했다.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려면 물동이를 몇 개씩 준비해서 물지게에 물을 져다가 채워야 했다. 매일 고이는 것이 딱 한집에서 쓸 만한 정도인 이웃집 우물은 감당도 안 돼 마을의 공동우물 터까지 가야만 했던 시절. 어린 어깨는 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반통씩 채웠어도 몇 걸음 못가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땡볕에 몇 십리를 왕복해가며 물을 긷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제일 힘들었던 것 중 손가락에 꼽는 것이다.
 먹을 물 뿐만 아니라 농사에 쓸 물도 귀했던 시절. 가뭄이 들면 더 힘들었다. 서로 타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살갑게 살던 이웃들과 물싸움이 비일비재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린 정말 물 걱정을 손톱에 낀 때만큼도 안 하고 사는 것이다.

▲물 끊지기 않으며 도시 비대화
 물을 마시지 못하면 온갖 생명이 스러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사람이 살만한 터를 잡을 때 제일 먼저 마실 물이 있는 가를 봤다고 한다. 맑은 물이 샘솟는 곳이 길지(吉地)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큰 도시도 마을도 집들도 터를 잡고 짓는다.
 바람과 물을 우선하여 장풍득수(藏風得水)를 따져가며 건설하고 짓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산을 뭉개고 물길도 마음대로 바꾸고 모래벌판이나 물속에도 집을 짓는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이 모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것이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개의 바탕 중 중요한 핵심요소가 ‘아무 곳에서나 틀면 곧바로 나오는 물’이 아닐까 싶다. 탐욕스런 도시, 비대한 도시를 가능케 했던 수도꼭지(?).
 광주도 15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몰려 사는 것이 가능케 했던 것이 ‘아무 곳에서도 틀면 곧바로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어 가능 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되자 자신들이 맑은 물을 먹기 위해 만들었던 1수원지부터 광주댐을 거쳐 지금은 동복댐과 주암댐이 광주의 주요 식수원으로 역할을 했거나 하고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한 잔 물을 마시다가 물의 근원을 살펴본다.
 제1수원지나 2, 3, 4수원지와 광주댐은 무등산에 연원(淵源)을 둔 식수원으로 광주천을 거쳐 영산강으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동복댐과 주암댐은 어떤 수계(水系)인가 살펴보니 아뿔싸다.
 이 도시는 뭔가 잘못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날마다 무심코 틀어 받아먹고, 다시 버리기는 섬진강이 아닌 영산강에 흘려주고 있었구나.
 섬진강을 따라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 마실 물이 대도시의 빨대를 통해 엉뚱하게도 다른 수계로 흐르고 있었다니…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구나.
 혀를 끌끌 차면서도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한 잔의 물을 마시면서 이 물의 근원을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바쁘게 말이다.

▲생명의 근원을 생각하는 삶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비가 오면 산은 물을 고르게 나눈다.
 모든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다. 산은 나눈 두 물줄기의 젖줄로서 어머니다.
 그래서일까 흐르는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이산 저산을 보면 산도 물처럼 흐르고 있다.
 흐르는 산 또한 물을 건너지 않는다. 산은 흐르다 두 물이 서로 만나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 곳에서 멈춘다. 인의예지(仁義禮智)다.
 대동여지전도 발문(跋文)에 있는 산자분수령, 우리나라 자연질서의 아름다운 표현이고, 이 땅의 만백성이 본성을 찾는 사단경이다.
 산자분수령으로서 무등산은, 북사면으로 영산강의 젖줄이고, 남사면으로 섬진강의 젖줄이다.
 흐르는 물이 산을 넘거나, 흐르는 산이 물을 건너면, 일단은 부자연(不自然)이고, 불효부제(不孝不悌)고, 재앙(災殃)이다.”
 
 무등산 분수령(分水嶺)을 말씀 하시던 모닥 최봉익 선생님의 글을 찾아 다시 곰곰 읽는다. 어느덧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무등에 어김없이 햇귀가 터온다.
김경일<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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