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성을 벗어난 공동체는 가능한가?’

 갈고닦은 토론 실력을 뽐내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 앞에 ‘시제’ 중 하나가 내걸렸다.

 옛날 과거시험장 유생들처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순간, 눈빛들 흔들린다. 생각 정리 시간 10분. 곧바로 토론이 시작됐다. 사실상 배틀이다.

 지난 8월 광주에서 열린 5·18전국학생토론대회 풍경. 5·18기념재단이 주최하는 전국 고교생 대상 토론·경연이다. 13회째인 올해 주제는 ‘잡은 손의 따스함-공동체를 말하다’. 전국에서 140여 팀(2인 1팀)이 참가 신청했고, 1차 심사를 통과한 24팀(48명)이 1박2일 광주에 머무르며 본선-결선을 진행했다.

 필자는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현장에 있었다. 고교생들의 토론대회라는 흔치 않은 장관을 지켜볼 수 있음은 감사했으나, 사고의 깊이를 재단해야 할 운명적인 자리는 답답했다. 그래도 심사위원이 18명이나 됐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 어쨌든 이날 대회는 본선 1, 2, 3차를 거쳐 최종 선발된 4팀이 다음날 결선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국 교교생 24팀 광주서 토론

 글 첫머리에 제시한 주제(‘배타성을 벗어난 공동체는 가능한가?’)는 당일 현장에서 공개된 주제 2개(나머지 2개는 사전 공지)중 하나였다. 소그룹을 이룬 8명이 각자의 입장을 제시(입론)하고, 논리를 전개했다. “쉽지않을텐데…”라는 예감대로였다. 말은 ‘공동체’의 정의에서 맴돌았으며, 상대를 공박해야하는 토론이 ‘자기 주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의 힘이 어찌 학습으로만 얻어질까. 삶에 체화된 경륜이 부족한 학생들에겐 당연한 한계였지싶었다.

 미리 공개된 주제 중 하나인 ‘개인들의 욕망의 해방과 공동체적 가치는 모순되는가?’라는 토론도 쉽지않긴 마찬가지. 다만 본선 3차인 이 주제엔 주도토론이라는 방식이 첨가돼 흥미를 더했다. 한 팀에게 주어진 주도적인 10분,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서 우열이 갈렸다. 자기 주장을 펼치는 건 기본. 상대를 지목해 답변을 듣고 그 허점을 공박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치고 받는’ 토론의 진수를 기대하게 하는 장치였다.

 지켜본 바 토론을 잘할 수 있는 기술이 보였다. 대략 두가지.

 첫째, 어려운 용어는 피하라. 유명 학자들의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팀, 정작 자기 팀 논리는 빈약하니 강렬한 빛에 흐릿해진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약했다.

 둘째, 상대방 말을 잘 들어라. 질문을 한 뒤 답변에 귀기울이지 않는 팀, 빤해보이는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잡아내지 못하고 제 말만 집중해 논쟁을 잠재워버렸다.

 아쉬움뿐인 건 아니었다.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감정의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본선 1차, 맨처음 제시된 주제가 그랬다. ‘학교는 공동체인가?’ 이는 비공개로, 당일 현장에서 토론 10분 전에 제시됐다. 학습이 아닌 평소 자신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토양이었던 것.

 본선 1차는 팀별 아닌 개인별 경합이 벌어졌는데, 필자가 심사를 맡은 소그룹 참여 학생 8명의 생각이 반반으로 갈렸다.

 ‘학교는 공동체다’, ‘학교는 공동체가 아니다’가 4:4. 기조 발제를 ‘공동체’의 개념 정리부터 시작한 건 공통된 흐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이란 사전적 정의는 대동소이했다.



학교의 존재이유를 묻는 학생들

 공동체 개념을 ‘목표나 삶의 공유·공존’에 두니, 일단의 토론자들은 ‘학교는 공동체다’고 했다. 학교라는 조직과 구성원인 학생 개개인의 목표를 동일시한 전개다. 학교에서의 지식 전수·성적 경쟁은 사회화 과정이고, 취학·진학 교육 역시 학생의 장래를 위한 학습 공정이라는 주장이었다.

 공동체 개념을 공유해도 ‘학교는 공동체가 아니다’는 논리가 전개됐다. 학교의 목표가 학생 개개인의 목표인 자아 실현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 대학 진학률·취업율 ‘깃발’은 집단(학교)의 명예를 위한 ‘고지전’일 뿐이라고 선긋는다. 이렇게 탈환한 고지는 깃발든 몇사람의 영광일 뿐 전투에서 희생된 대다수에겐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몇몇은 ‘학생이 학교의 구성원이 맞나?’에 의문을 품었다. 학교 운영 관련 의사 결정구조에 참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구성원’이란 지위를 부정했다.

 학생들 토론을 들으며 자문해 봤다. 학교는 공동체일까?

 5·18전국학생토론대회에서 정리된 결론은 없다. 다만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학교의 존재이유를 묻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채정희 <편집국장>

이글은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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