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다른 `그들의 세계’

 “우리 같은 노동하는 사람들 정년이 무슨 필요야. 나 같은 엄마들이 어디 가서 일을 해요. 청소밖에 할 수 없잖아.남편도 벌이가 없는데 내가 안 벌면 어디서 돈이 나올 데가 없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 그냥 몸 아프면 일 못하는 거지. 거기에 정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아직 청소 같은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자기들 힘 있다고 자르니까.”

 계림동 로데오빌딩에는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광주지점 마권장외발매소가 있다. A씨는 얼마 전까지 거기서 청소 일을 했다. 하루 4000~5000명이 몰리는 업장에서 청소를 하는 일은 고됐지만 그래도 월급 꼬박 꼬박 나오는 것으로 지금껏 일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A씨를 직고용했다는 업체는 그에게 정년을 통보했다. ‘짤린 것’이다. 그는 이게 억울했다. 아직 1년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같이 일했던 ‘언니’도 65세까지 일했고 다른 사람들도 65세까지 일했는데 갑자기 64세가 정년이라고 했다. “자기들 마음대로”라고 생각할 수밖에. A씨는 1년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내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라고 내게 물었다. 대답은 하지 못했다.

 마사회 광주지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법’상 고용주는 서울 강남 대치동에 있는 업체로, 지난 2013년 3월부터 마사회에 청소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시설관리’란 이름으로 여러 곳에 청소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업체 임원이란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마사회 청소노동자들의 정년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그가 있는 ‘서울’만큼이나 이곳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걸 왜 알고 싶어하죠? 그런 세세한 것 까지?”라고 되묻는 목소리엔 그런 사소한 걸 알아서 어디다 쓸거냐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그는 내가 하는 말마다 ‘그게 아니다’라며 용어를 ‘정정’했다.

 “청소 노동자들의 정년이 어떻게 되나요?” “노동자 아닙니다. 근로자가 맞습니다.” “정년을 이유로 계약해지 된 것으로…” “계약해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정년퇴직’입니다. 정년이 돼 자연스럽게 일을 않하게 된거죠.” “전 업체에서 고용승계 되신 분들…” “고용 승계라뇨. 고용 승계가 아니라 인력 수용입니다.” “해고 되신 분들의 심정도…” “해고 아니라 정년입니다.” “근로조건이 변경되는 사항이라면 노조와 합의를 해야…” “노조라뇨? 외부단체입니다. 우리 회사랑은 상관 없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물 흐르듯 흘러야 된다. 고용도 흘러야 된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그의 세계에선, A씨는 그냥 정년퇴직 한 거고, ‘해고’된 사람은 없다. 마사회 광주지점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공공운수노조는 ‘듣보잡’ 외부단체다. 그의 세계에선, 1년 더 일하는 것이 절박한 청소 노동자는 없다. 알 필요도 없다. 모든 문제는 없다. 정년 역시 원래는 60세인데 회사가 편의를 봐줘서 몇 년 더 일하게 된 것이다. 회사가 ‘편의’를 봐주면 더 일할 수 있고, ‘편의’를 봐주지 않으면 그냥 그건 할 말 없는 거다. 그는 업체가 3년마다 계약을 하니 3년 동안 고용을 보장받아 ‘근로자들’ 입장에선 다른 곳보다 상황이 좋다고도 했다. 오히려 업체는 자신들이 더 힘들다고 했다.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3년 뒤 마사회와 계약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청소일을 하는 데 이 업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전화로만 ‘관리’하는 이들의 역할이 마사회 청소 업무에 어떤 필요가 있을까? 임원이라는 그는 마사회 광주지점에서 청소일을 하는 청소 ‘근로자’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나 있을까?

 마사회 청소 노동자들이 수년 째 4000~5000명이 드나드는 업장에서 청소일을 해오는 동안 이들을 직고용했다는 ‘사장’들의 얼굴은 3년 마다 바뀐다. 그의 말대로 업체 사장들만 “물 흐르듯 흘러” 간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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