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최근엔 정부가 대한항공 사명에서 ‘대한’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정부는 일단 ‘사기업 이름을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하지만 ‘사명 회수’가 공개적으로 거론됐다는 것만으로도 대한항공에겐 불명예이고, 치명상일 게 분명하다. 사기업이지만 사실상 국책 항공사 같은 대접의 근간인 ‘그 이름’을 빼앗길 수 있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한’이라는 이름을 회수(검토)하겠다는, 또는 정부를 향해 그 이름을 회수하라고 압박하는 여론의 밑바탕엔 “한국 기업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대한항공 사태 사명 회수 논란까지

 그만큼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글로벌 시대,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인 브랜드 이미지가 이토록 먹칠 당했다는 건 회사의 존망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태다.

 이번 사태 속에서 ‘한 사람이 조직을 말아먹을 수 있겠구나’를 실감했다. 그 사람, 조현아 전 부사장은 오너의 딸이다.

 대한항공 사태는 한국 특유의 족벌 경영의 폐단이 불거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능력과는 상관없이 혈통으로 승계받은 기업주이니, 조직원들이 동료로 보였겠는가. 생사여탈권을 쥔 그들에게 승무원들은 예전부터 ‘하인’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항공기 운항 규정’같은 시스템은 오너가의 폭력 앞에 전혀 작동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엔 다른 얘기. H투자증권은 올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이달 말 그 운명이 결정된다.

 지난해 12월 거래시 발생한 ‘주문 실수’ 때문이다. 당시 이 증권사에선 코스피 12월물 옵션을 주문하면서 실수로 시장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매물을 쏟아내 460억 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이후 H투자증권은 당시 이익을 본 증권사와 헤지펀드 등을 상대로 이익금 환수에 나섰지만, 360억 원을 챙긴 미국계 헤지펀드는 돌려줄 생각이 없는 게 확실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24일 정례회의를 열어 H투자증권의 금융투자업 인가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인적 경영, 시스템 의존 모두 한계

 H투자증권이 파산하면 ‘주문 실수’로 문을 닫는 국내 최초 증권사가 된다.

 조직을 말아먹게 된 건 시스템 오류였다. 자동프로그램매매시스템이 오류이거나 잘못된 설정값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것. 예컨대 1000원에 사야하는 상품을 1만 원에, 1만 원에 팔아야 하는 상품을 1000원에 매매 주문을 넣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 사람 때문에, 한 번 실수에 흥망이 좌우된다면 그 조직이 정상일 리 없다. 예의 사고들은 인적 경영의 허망함과 함께 시스템(제도)의 취약성을 함께 일깨워준다. 도식적으로 해석하면 인적 경영은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시스템은 인적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처방전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테다. ‘사람이 먼저냐, 시스템이 먼저냐’를 논하자는 건 아니다.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채정희<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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