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22일, 돌이켜보니 기억하고 기록돼야 할 의미 있는 날이었던 듯 싶다. 이후론 다시 이와 같은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주시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가 열린 날이었다. 정확히는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인사검증공청회였다.

 TV에서 중계되던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큰 이슈나 낙마를 좌우할 정도로 결정권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긴장감있게 진행됐던 기억이다.

 광주시에선 전년에 열렸던 김대중컨벤션센터 사장 인사검증공청회에 이은 두 번째이자, 그리고 마지막이 돼버린 인사검증 자리였다.

 광주시의회가 ‘광주시 지방공기업 인사검증 조례안’을 만들어 주관하고, 광주시는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였기에 한계가 분명하긴 했다. 이 조례는 안행부가 ‘위법’(지방공기업상에 규정된 인사권자의 임명권 침해)을 근거로 재의(再議)를 요구하고 시의회가 이에 반발해 조례안을 재의결하자, 대법원이 이를 무효 판결하면서 2개 기관장 인사 검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광주시 입장에선 ‘앓는 이 뺀’ 심정이었을 테다.

 그렇게 적용 기관도, 운영 기간도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시행 자체가 남긴 자산이 적다고 할 순 없다.

 민선 6기 윤장현 시장 취임 후 비등해진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 목소리가 이 같은 경험의 산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불완전했지만, 당시 현장에서의 느낌은 인사공청회는 제도 자체만으로 나름 효과가 있겠구나하는 확신이었다.



DJ센터 사장·환경공단 이사장 `경험’

 당시 환경공단 이사장 인사검증공청회엔 두 명의 후보자가 검증대에 올랐다. 이들을 겨눈 검증위원은 시의원 4명·시민단체 추천 인사 3명 등 총 7명. 위원들은 ‘환경공단이 광주시로부터 위탁운영비로 지원받는 연간 536억 원의 예산 절감 방안’을 물었다.

 A후보자는 “하수슬러지시설 건조 등 기술을 향상해 처리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고, B후보자는 “공단 업무에 대한 내부 진단을 통해 개보수 비용이나 전력비 등에서 줄일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RDF(가연성폐기물고형연료화사업) 시설 가동 시 폐쇄될 상무소각장 근무 인력 40여 명에 대한 대책’도 따졌다.

 A후보자는 “새로 RDF 시설이 가동되는 만큼 해당 인력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에 대해선 “RDF 시설이 민관합작 제3섹터 방식으로 진행돼 사기업이 운영하게 될 텐데, 공사 직원의 신분 변화 가능성과 이를 사기업이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에 직면했다.

 B후보자는 “공단 업무 분석이 우선으로, 인력이 최소로 편제돼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공단 내에서 흡수할 방안을 찾겠다”고 했고, 이에 대해선 “공단의 인력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을 것인데, 수용 방법을 찾지 못하면 대책이 없는 것 아니냐?”는 추궁을 당했다.

 병역·재산 등 도덕성에 대한 공세도 이어졌다.

 입대 후 현장에서 귀가한 한 후보자에겐 “병역 기피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농부가 아니면서 담양·장성 등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던 후보자는 “투기 의혹”이라는 질타를 피하지 못했다. 인사권자(광주시장)와 교감. 즉 ‘내정설’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은 후보도 있었다.

 이날 인사검증위원회는 두 후보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채택, 인사권자인 광주시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광주시장이 임명한 공단 사장이 위원회의 의견을 충실히 따랐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 여긴다.

 당시 공청회 현장은 누구에게나 공개됐고 후보들도, 위원들도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능력 없고, 연줄에 의존한 인사들의 무모한 도전을 막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능력과 자질을 검증한 보고서를 채택해 전달하고, 공청회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으므로 인사권자가 자신과의 친소관계만 따져 임명하기엔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더해본다.

 공개 검증, 즉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광주시장,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좌우

 최근 광주시와 광주시의회는 시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시행에 합의하고, 대상기관 8곳도 확정했다.

 청문회 결과 채택된 보고서가 인사권자를 강제하지 못한다는 등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필자 역시 우려하지 않는바 아니나, 그래도 하지 않을 때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인사권자의 임명권 침해’ 등을 빌미로 정부가 ‘딴지’ 걸 가능성도 있기에 수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도 여전히 불안한 대목이다.

 다시, 2013년 5월로 되돌아가본다. 당시 인사검증 공청회 제도가 좌초한 것과 관련 정부의 제동 탓이라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건 광주시의 의지 부족이다. 인사권자인 광주시장이 이 제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핑곗거리가 생기자 슬그머니 발을 빼버렸다고 보는 것이다.

 민선 6기 경기도의 사례도 지자체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새로 취임한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도지사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연정’을 실현하고,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권한을 도의회에 부여했다. 경기도의회는 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실무능력을 2단계로 검증했고, 이 결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장에 대해 ‘부적합’ 보고서를 채택했다. 남 지사는 이를 수용해 실제 임명을 보류했다.

 이렇듯 인사청문회 제도의 성패는 인사권자인 자치단체장의 마인드와 직결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시가 의회가 주도한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에 동의하고, 세부내용에 합의한 건 이전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이왕 하기로 한 만큼,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할 것이고, 그 중 핵심이 인사권자가 자신의 권한을 내놓는 것이다. 이는 윤장현 시장의 몫이어서 인사청문회 제도의 성패는 결국 광주시장의 태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 됐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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