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 아니, 만나서는 안됐다. 그 ‘둘’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상처’뿐이었으므로. 탓할 수 있는 것은 이 둘을 이어준 ‘운명’인 걸까?

 사실 이 불운한 운명은 거스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우연이 아닌 필연, 제도가 만들고 사회가 조장한 운명이란 링 위에서 일어난 피 튀기는 싸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링 위에 선 중증장애인 A씨의 목소리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남의 손을 빌려 몸을 닦을 수밖에 없는 불구여서가 아니다. 세포에 와 닿는 무감한 이물질이 생명의 불씨를 꺼뜨릴 것 같은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받게 된 무료간병서비스는 A씨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A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을 시키는 간병사에게 몸을 맡기면서 “나는 물건이 아니다, 사람이다”라는 말로 자기최면을 걸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식사시간. 입으로 들어오는 숟가락보다 반짝거리는 비닐장갑을 보며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설움을 삼키려 눈을 감았다고 했다. 간병인은 A씨를 목욕시키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낀 채로 식사를 보조했던 것이다.



무료간병서비스에 “난 사람” 울분

 그렇게 간병사가 착용한 고무장갑과 비닐장갑은 물리적인 거리만큼 가깝고도 질기게 A씨의 모욕감을 잡아당겼다. 이에 A씨의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 “기분이 불쾌하다”며 간병사에게 항의표현을 한 것이다.

 간병사는 당황했다. 지난 2년간 간병 일을 하면서 고무장갑을 꼈다고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간병사를 파견하는 자활센터나 동료 등 이쪽저쪽에서 권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다른 환자를 돌보다 왔으니 장갑을 껴 달라”고 먼저 부탁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상처받은 A씨 그리고 난처한 간병사, 이 둘의 만남이 결국 ‘잘못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장기간 입원으로 보건복지부의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된 A씨는 자치구 자활센터에서 제공하는 무료간병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활동보조를 받아온 7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던 ‘고무장갑 목욕’에 크게 상처를 받고 본보에 연락해 온 것이다.

 이와 함께 무료 간병사 측 입장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었다. 간병사를 파견한 자활센터에 따르면, 병원근무의 특성상 장갑 착용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열악한 근로환경을 운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이해됐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생계곤란자가 대부분인 이들은 한 달 씩 병원을 전전하며 하루 3만 원으로 제한된 일당을 받고도 상당한 노동 강도에 노출돼 있었다.

 문제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부족한 무료간병인을 부를 수밖에 없는 A씨의 상황이었다. 애초에 입원 당시 A씨를 돌보던 활동보조인이 함께일 수 있었다면 이러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터.



일당 3만 간병사-중증장애인 잘못된 만남

 결국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는 A씨를 방치한 것은 보건복지부의 지침 한 줄. ‘의료기관에 30일 이상 입원할 시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 된다’는 ‘법’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중증장애인과 일당 3만원이 없으면 역시 살아갈 수 없는 간병사가 함께 링 위에 올랐다. 한 인간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이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각자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만 남기게 한 운명의 장난은 누가 벌인 것인가? 복지사각지대에서 언제 낙오 될지 모르는 삶을 버티려면 ‘사랑’이 더 필요해 보인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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