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고사장 들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긴 여정의 끝인 듯도 하고, 어쩌면 새로운 터널의 진입로인 듯도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이날 만큼은 수년간 수고와 노력의 대가로 여기고 꿀 같은 휴식 취하길 기도했다.

 너의 고사장 입실을 바라보며 아빠는 몇 주 전 응시했던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장을 떠올렸다. 까다로운 신분 확인, 엄격한 입실 통제가 제법 국가 자격 시험장 분위기를 잡더구나. 핸드폰은 소지만 해도 부정 행위이고, 이 경우 향후 몇 차례 같은 시험 응시 기회조차 박탈된다는 경고 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기억이다. 답안지 OMR 카드 색칠 땐 번지지 않을까, 잘못 체크하지 않을까 가슴까지 졸였더란다. 단순한 자격 시험도 이렇듯 긴장시키는데, 인생이 걸렸다(고 여겨지는)는 시험에 응하는 이들의 부담감은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겠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

 사실 대학 입시 전쟁은 몇 달 전부터 체감이 되더구나. 수시모집 시작과 함께였지. 응시할 대학 탐색이 그토록 만만치 않은 미로일 줄이야. 수준에 맞는 대학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고, 대학마다 전형 방법은 왜 그렇게 천차만별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더라. 학교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다 다르니 같은 내용의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치고 밤을 새웠던 일이 새롭다.

 꿈꾸는 미래가 비교적 분명했던 너였지만, 막상 원서 작성 때가 되니 ‘현실’ 기준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게다가 가정 형편을 고려해 국공립대만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걸 보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금수저’를 주지 못한 부모의 심정이란 다 이런 것일게다. 죄책감. 아빠도 부모로부터 금수저를 못 받았으니, ‘내 탓은 아닐지니’ 해봤으나 위안이 될 순 없었지. 생전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배움의 기회조차 충분치 않았다”는 선친의 한탄이 떠올라, ‘흙수저’가 이렇게 대물림되는 것 아닐까 암담했더란다.

 밤늦게 하교해 다시 독서실로 향하고, 공휴일도 없이 아등바등했던 지난 1년의 삶은 지켜보는 것 자체로도 고역이었다. 하물며 당사자의 고단함은 어땠겠니. 단풍이 드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눈감았던 세상을, 다시 눈 돌리고 바라보거라.

 수능이 끝났어도 점수라는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을 줄 안다. 그래도 지금은 생각말아라.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걸 리스트로 작성했다 지.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스마트폰도 바꿀 거라며 벼른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 다 해보자.

 미래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판내는 ‘수능’ 제도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거쳐야 하는 과정임엔 분명하니. 견디고, 이기고, 즐기거라.



“어느 대학 갔어요?” 묻지 않기

 이제 새로운 길을 가게 되겠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게다. 목적지도, 동행자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 수도 있겠구나? 너는 독립·자유를 외치며 들떠있지만, 걱정스럽고 아쉬움 가득한 부모 마음도 헤아려주길 바란다.

 새로운 길은 그냥 주어지진 않을 게다. 선택하는 거지. 두 갈래 길을 다 갈 순 없으니, 선택이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임을 이해하겠지. 가지 않은 길 아쉬워 말고, 선택한 것에 집중할 일이다. 나머진 남겨놓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니.

 남들이 너에 관해 물어도 모른다 할 것이다. “어느 지역으로 갔느냐?’” “어떤 대학 갔느냐?” 등등의 물음 말이야. ‘진학한 대학으로 미래를 규정하고 예단해 버리는 어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네 하소연을 이해한다는 뜻이야. 대신 이렇게 전할게. 아무것도 묻지말라고. 안아주라고. “수고했다” 한마디면 족하다고.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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