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의 작전은 맞짱이었고 의회의 작전은 인질이었다. 애초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빚어진 사태, 동맹의 명분은 충분했다.

 우선 선택된 건 강공. 그러나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정공법이 먹히지 않으면서 인질 작전이 전개됐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구원군 파병 요청을 정부는 이번에도 모른체. “살려달라”는 하소연, 보급 차단에 따른 고통은 오롯이 인질들 몫이었다. 원망이 극에 달했다. 이들의 분노는 오지 않은 구원군보다, 납치범(?)에게로 향했다. 사태를 촉발한 정부가 전선에서 사라진 순간이다. 이제 동맹군이 할 수 있는 건 ‘속죄양’ 만들기. 책임론과 수습책 앞에서 동맹은 내전 양상이다.



▲유치원 볼모 삼아 어린이집 구하기?

 최근 광주지역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3개월 치(10~12월) 예산 편성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지역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이 시의회에 제출한 3회 추경 예산안에 유치원 누리과정 잔여 3개월치 179억 원만 편성하고, 어린이집 예산은 세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복지부 소관인)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정부 책임”이라는 건 광주시교육청의 일관된 논리. 올해 추경도 이같은 기조에서 교육청 소관인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만 편성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간 형평성을 문제삼았다.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조차 삭감한 이유다. “어린이집 예산을 세우라”는 압박으로, 유치원이 볼모잡힌 셈이다.

 논란 끝에 광주시가 학교용지부담금 300억 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370억 원을 교육청이 편성하는 ‘땜질’처방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이전과 같은 갈등이고, 정해진 패턴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교육청·광주시·시의회간 불협화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교육청은 유치원 예산만 책정하고, 시의회는 이를 제동 걸고, 광주시가 중재에 나서 어린이집 비용까지 마련하는 식이다.

 무상보육의 대명사인 ‘누리과정’은 이명박 정부 때 설계하고 박근혜 정부가 구체화했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떠넘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교육교부금은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세금 중 일정 부분을 떼어내 지방 교육청에 지원하는 예산이다. 느닷없이 추가된 누리과정 예산을 이 재원에서 부담하라는 건, 교육청이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교육청은 이에 반발했다. 각 지역교육청과 정부가 대결을 이어온 배경이다.

 2014년 10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정부 소관인)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전액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 2015년 10월, 광주에선 ‘지방교육재정 위기 극복과 교육재정 확대를 위한 광주시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 초·중등교육 여건이 심각하게 후퇴한다”는 걸 알리고자 나선 시민운동이었다. 여기엔 지역 교육·시민·경제단체 70여 곳과 광주시의회가 가세했다.

 2015년 12월, 광주시교육청은 2016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유치원 누리 예산 598억 원만 반영했다. 어린이집 예산은 없었다. 이에 시의회는 어린이집과 형평성을 이유로 유치원분 예산 전부를 삭감했다.



▲“형평성” 앞에서 “정부 책임론” 무력화

 당시 시의회는 “정부를 상대로 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싸움의 동력을 높이기 위해 광주시·교육청·시의회 3자가 의기투합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예산 확보 전술을 ‘유치원 볼모’ 작전으로 변경한 것이다. 어쩌면 이때가 동맹의 최정점이었을 터. 하지만 이로써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면서 동맹은 균열로 치달았다.

 ‘동맹’의 틀안에서 주력인 시교육청의 무기가 무뎌진 영향이 컸다. “형평성”을 앞세운 시의회에 굴복, “정부 책임”이라며 버텼던 어린이집 예산을 지원해 버린 탓이다. 이후 누리과정 예산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반반씩 나눠쓰는 형국이 되면서 2~3개월마다 예산을 수혈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교육청은 이제 “어린이집은 정부 책임”이라고 버틸 명분을 상실했다. 이는 시의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장휘국 교육감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국비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왜 난데없이 이를 학교용지부담금으로 때우려고 하느냐. 이럴 거였으면 진즉 태도를 바꿔 다른 시도교육청처럼 중앙정부 지원금이라도 받았더라면 시와 교육청의 재정 부담이라도 줄였을 것 아니냐. 교육감의 오락가락 행정 때문에 명분과 실리 모두 놓쳤다.”

 엊그제 열린 시의회에서 한 의원이 교육청을 질타한 발언 중 일부다. 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망각한 걸까? 외면한 걸까? 동맹의 한 축이었던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는, 유체이탈에 다름아니다.

 동맹은 이미 균열인데, 외적은 그대로다. 이제 싸움은 해보나마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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