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붉게, 밤엔 하얗던 황홀경이 며칠새 볼썽사나운 잔해다. 엊그제 내린 비가 아니었더라도 그리될 운명이었으리라. 모르진 않았다. 계절보다 앞서 사그라들 것을. 그 꽃 절정 무렵, 나만의 ‘포인트’서 꽃비를 맞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올해도 그렇게 했다. 땅으로 땅으로, 낙화가 숨막혔다. 그침 없어서…. 화려함은 짧다. 그러나 꽃은 내년에 또 피는 게 세상 이치. 단 나무를 지켜야만 가능한 기대다.

 광주드림이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창간 기획으로 이것저것 들여다보면 한 해 이력이 성적표 마냥 호출된다. 주식회사로 시작해 사단법인으로 재출범, 그렇게 15년을 이어왔다, ‘광주, 광주 사람’이 중심인 실질적 의미의 지역언론을 지향했다. ‘소외된 목소리를 크게 듣겠다’며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편집권 독립’을 독자들과의 약속의 1계명으로 내세웠다.

 매번 화려한 꽃을 피우진 못했겠지만, 때 되면 꽃씨 틔울 나무는 지키지 않았을까? 위안삼아본다.

▲꽃은 또 핀다. 단 나무를 지켜야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만나본 적 있소?”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현인으로 알려진 솔론이 받은 질문이다. <헤로도투스 ‘역사’>

솔론에게 질문한 이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권력자다.

 “그래 왕이 제일 행복하오”라는 답을 듣고 싶었을 터. 그런데 솔론은 크로이소스 기대와는 다른 얘기를 했다.

 “행복한 사람을 봤지요. ‘텔루스’라는 남자, ‘클레오비스’와 ‘비토’형제입니다.”

 솔론이 말한 이들은 조국에 충성했던 전사였고, 우애가 넘치고 부모님께 효도했던 형제들이다. 공통점이 있는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행복이 서민들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발끈한 크로이소스. 이에 솔론이 ‘해답 풀이’를 들려준다. 이 대목은 이윤기가 쓴 ‘그리스에 길을 묻다’에서 인용해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신들의 뜻과 운명의 장난을 다 모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행복하다고 부른 것은 경주를 끝내지도 못한 선수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의 권력자 키케로가 말년에 쓴 ‘노년에 대하여’에도 같은 맥락의 글이 있다. “설사 지금 나이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해도, 요람에 눕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난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이제야 길고긴 경주가 끝나고 결승선에 들어왔는 데 또다시 출발선으로 끌려가고 싶진 않다.”

 세상 무상을 아는 이들의 지혜를 엿본다. 인생은 긴 마라톤, 중간 집계에 일희일비 말라로도 읽힌다.

 광주드림 15년, 독자들 평가가 궁금하다가도 솔론의 지혜를 빌어 ‘끝까지 지켜봐주세요’하련다. 그럼에도 종점서 헤매지 않도록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점검하는 것 또한 지혜로운 처사로 여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한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열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곪는 사람이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백섬 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최명희 ‘혼볼’ 중>

 드림에게 주어진 ‘몫’은 무엇이고, 잘 감당해 왔을까?

 ‘시민공감 지역신문’이란 ‘사시’를 우리 몫으로 지향해왔다. ‘소외된 목소리를 크게 듣겠다’고 선언한 드림에게 ‘시민’은 만인일 수 없었다. 장애인·여성·노동·환경을 중심에 두니, 비장애·남성·자본·개발을 앞세우는 시민들과는 불화가 잦았다. 드림을 미워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느끼는 배경이다. 그런데 그 ‘미움’이 광주드림의 존재가치와 잇대있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 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중>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하면, 미움 받는 걸 두려워하면 내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는 말. 해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 앞에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인생’이 있어. 이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걸세.”

 창간 15주년 즈음에 ‘미움받을 용기’를 분발한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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