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본보에 대한 프로그램 저작권(글씨체) 위반 혐의의 고소가 지난 3월 접수됐다며 조사에 응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고소인은 윤디자인그룹이라고 했다. 이미 작년 말 본보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혐의 고소장을 제출했던 회사다. 당시 윤디자인은 본보 홈페이지 ‘지면보기’에 올라 있는 PDF 파일에 자신들 서체가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고소에 따라 조사가 이뤄진 끝에 경찰은 ‘불기소’ 의견 송치, 검찰은 지난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또 고소라니…. 사안을 검토한 경찰은 “두번째 고소가 첫번째와 동일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두번째 건을 각하했노라고 우리측에 통보했다.

 정리해보면 윤디자인은 같은 사안으로 본보를 두 번 고소한 셈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으니, 고소인측 처사는 어찌되는가? 본보 법률 자문 변호사는 “무고와 업무방해 죄책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폰트 아닌 폰트파일이 보호대상

 고소건에 대응하면서 폰트파일 저작권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폰트 디자인 업체들이 관련 법을 무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는 인상도 짙다. 업체측 의도는 뭘까? “범죄에 대한 징벌에 목적이 있는 것 같진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금전적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겁을 준다”는 의심이 차라리 합리적이다. 본보에 대한 소송도 합의 거절후 나온 조치였다.

 이같은 행태가 빈발하는 건, 일반인의 경우 고소 같은 사법적 조치에 직면하면 심리적 중압갑을 못이겨 ‘합의’에 목매온 탓이다. 신문사인 우리 역시 피고소인 신분은 부담스러웠다.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받고, 법률적 대응을 위해 자문받고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이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럼에도 업체측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법적으로 대항해 혐의를 벗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저작권 관련 일방적인 합의의 배경이 되는 ‘법대로’가 피고소인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말을 공유한다. ‘쫄지 말고 대항하라’고 주문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글씨체를 포함한 지적재산권은 법상 보호받을 권리라는 사실이며, 사용자는 위반하지 않아야한다 인식이 전제라는 점이다.

 폰트 저작권과 관련, 본보 사례를 바탕으로 쟁점을 간추리면 △폰트와 폰트파일 차이점 △2차적 저작물 의미 △외주 제작시 책임 소재 △ 한글 프로그램 내 글꼴 사용 책임 등이 꼽힌다.

 우선 대법원은 일관되게 폰트(글자체) 자체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폰트파일에 대해 ‘프로그램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글자가 박힌 결과물(인쇄물, 현수막 등)만으론 위법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실제 그 작업을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폰트파일을 불법으로 내려받았다는 게 입증돼야 범죄가 성립한다. 입증 책임은 물론 고소인측에 있다. 이를 입증하려면 사용자의 컴퓨터를 뒤져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업체가 고소를 남발하는 건, 범죄 입증보다 겁을 주겠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E북 등 2차적 저작물 쟁점

 윤디자인이 본보를 상대로 프로그램 저작권(폰트파일) 위반 혐의를 제기한 글자체는 4개였다. 이 대목에서 ‘외주 제작시 책임 소재’ 문제가 등장한다. 본보는 광고·그래픽 등 디자인 업무는 외부업체에 의뢰해 제작하고 있다. 고소인이 제기한 4가지 서체 모두 외주제작사가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작 배포한 ‘폰트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알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저작물 외주 제작은 위탁·도급 계약에 따라 수급인이 독립적 지위에서 자신의 재량에 의해 저작물을 만들며, 외주 제작의 결과물에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작한 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서체’를 사용했음에도 저작권 위반을 제기한 대목도 납득 불가다.

 윤디자인이 제기한 서체 4개 중 3개는 한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컴오피스가 저작권을 허락받은 것들이다. 한컴오피스는 ‘글꼴 저작권 관련 문광부 및 저작권 위원회 회신글’에서 “한컴오피스 제품 내의 기능을 이용한 결과물은 프로그램에서 지원하고 있는 폰트파일을 활용하는 것으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정품으로 구매한 프로그램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권리자와 이용자간 계약에 따른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권리자가 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컴오피스는 자신들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글꼴 200여 개를 나열하고 있는데, 여기에 윤디자인 서체 20여개가 포함돼 있다. 이는 한글프로그램 사용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서체라는 의미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고소한 것을 겁주기 외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까.

 ‘2차적 저작물’ 여부도 폰트 저작권 분쟁에서 중요한 항목이다. 윤디자인 측은 본보 지면보기의 PDF가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하므로 지면과 달리 별도의 라이센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저작권법은 ‘5조(2차적 저작물)’에서 ‘①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하 ‘2차적 저작물’이라 한다)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면보기는 본보 지면을 그대로 사진 찍어 올려놓은 것으로, 별도의 창작물도 아니고, 변형·각색 등 어떠한 추가 작업이 진행된 바 없어 독자적인 저작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수사기관은 최종 ‘혐의없음’으로 결론냈다.
 
▲법대로 하자고? 쫄지말자!

 더군다나 윤디자인이 본보에게 책임을 물은 4가지 서체 중 한 개는 광고지면으로, 본보가 작업한 결과물도 아니다. 업체측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로 본다.

 본보는 이와 같은 논리로 대항해 위법 혐의를 벗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해방감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주위를 탐문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많았고, 대부분은 금전적으로 합의하고 상황을 정리했다고 했다. 이들은 “합의금이 과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피해의식이 컸다. 그럼에도 법적 대응은 피하고 싶다고 한다. ‘돈 들어가’ ‘시간 버려’ ‘마음 졸여’라는 부담감이 너무 큰 탓이다. 이같은 대항 의지 상실이 “합의금 장사 성행”의 토양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이나 영세업자에게 ‘자위권’ 발동과 그 뒷감당을 주문하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혼자 전전긍긍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저작권위원회 등이 이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기관이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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