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학생회는 단순하게 분류하자면 운동권 학생회, 반운동권 학생회, 그리고 비운동권 학생회로 분류된다. ‘운동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학생회는 곧 운동권이었다는 역사적 흐름을 짚을 수 있겠다.

 그런데 반 운동권·비운동권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건 기존의 운동권 학생회를 거부하고 차별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반운동권 학생회는 기존의 운동권 학생회의 ‘정치성’을 공격하며 ‘정치적이지 않은’ 학생회를 지칭한다.

 대표적인 예로 전남대의 2011년도 총학생회 ‘전설’을 들 수 있는데, 2012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 이들은 운동권 학생회였던 ‘액션’ 선거본부를 운동권/빨갱이/종북 등의 단어로 몰아 공격했다. 이에 반해 비운동권 학생회는 학생회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학생들의 이익과 복지를 대변하자는 자세를 고수하는 학생회를 말한다.

 최근 몇 년간 이런 대립은 대학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뤄졌는데, 이 대립의 양상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실제로 선거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떤 학생회냐에 상관없이 복지공약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운동권 학생회는 이념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다만 사회구조적 흐름에서 학생들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복지공약을 내걸고, 반/비운동권은 축제 강화, 취업 지원, 학습 공간 지원 등의 학생의 편의를 우선하는 복지공약을 내건다. 결국 학생회 간의 대립 구도를 제거하면 학생회마다 약간의 온도차가 있을 뿐 공약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경향은 학생운동이 ‘학생’대중(이하 대중으로 지칭)의 지지를 잃어버렸다는 데 기인한다. 반/비운동권의 등장은 실제로 운동권 학생회에 타격을 입혔고, 이는 더 이상 기존 학생운동의 언어와 행동을 대중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운동권 학생회는 더 이상 대중이 이념과 정치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념성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중이 정치적 행위를 거부하고 있다는 판단은 소수의 운동권들에게 생존 방편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율배반적인 복지공약을 남발하는 양상이 일반화 되었다. 또한 이러한 대중정서에 기반을 둬 반정치/비정치를 외치는 정치세력이 부상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대중이 비/반 정치적이다’라는 판단은 성급한 결론이다. 대중은 다만 정치성을 박탈당했을 뿐이다. 상당수의 대중은 비정치적·반정치적이기 전에 정치성을 자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모든 교육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치환되었다. 대학생이라는 안정적 지위는 대학생에서 인서울 대학생으로 인서울 대학생에서 명문대생으로 점점 좁혀졌다.

 이에 따라 공교육과 사교육 시장은 더욱 억압적이며 살벌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전사회적 생존 공포 속에서 대중은 체제에 정치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순응하게 된다. ‘민주화를 이루었기에 더 이상 운동은 필요 없다’는 인식, 정치의 위기 등의 여러 사회적 맥락은 대중이 정치적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순응하고 객체화된 대중은 점점 폭력과 권위에 익숙해져 가고 권력자들의 권력과 무례는 커져만 간다. 단적인 예로 대학 행정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전남대 대학 본부는 장학사정과 졸업사정을 인질삼아 토익시험을 강요했다. 농대에서는 건물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학생회실과 학생 사물함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없애버렸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관료들에게 모욕감을 느낀 자잘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학교 안에서 문제가 끝이 아니다. 청년 고용율은 40%에 불과하고 그중에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에 온갖 모욕과 고된 노동을 견뎌내는 청년들이 수두룩하고 여성 노동자들은 그보다 더한 모욕도 감당해야 한다.

 대중의 정치주체화는 추상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당장 이들의 삶에서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운동과 정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하지만 학생회는 더 이상 기존의 방법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념이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념이 대중에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은 대중을 만났을 때만 물리적 힘이 된다. 그러나 이념이 대중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이념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대중이 스스로 이념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고통을 ‘청춘이 원래 고통스럽다’는 종교적 명제에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사로잡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운동권 학생회가 이념을 숨긴다고 해서 대중과 운동이 결합될 수는 없다. 오히려 반정치의 흐름은 이 지점을 파고들어와 운동권 학생회를 악의 결사처럼 몰아갈 것이다. 당당히 이념을 이야기 하지만 대중이 딛고 있는 지반위에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 복지공약은 분명 대중이 원하는 바다. 그러나 치열한 사회구조적 분석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면 본질과는 상관없는 공허한 울림이 되고 말 것이다.

최용헌<대학생·용봉교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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