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고, 근거들을 가져온다 해도 자기 신념이 확실한 사람은 못이기는 법이다. 시간이 남아 간만에 접속한 카페 게시글에서 한 사람의 사건 정리글을 보고 카페 회원들이 남긴 감상이 딱 그거였다. 댓글 중에는 가족들에게서 허구한 날 빨갱이 취급 받는 작성자를 동정하는 것도 있었다.

 나도 그 사람처럼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너 종북이지?”라는 말을 꽤 자주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은 그 당시 논란이었던 신은미 토크콘서트 사건이나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동성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들은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이자스민 국회의원과 새로 개정되는 이주아동 보호 법안에 관한 것이었다. 전자는 이야기 하던 장소가 장소인지라(필자는 기독교인이다) ‘결혼 제도 하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과 단순히 동거하면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완전히 다른데, 같은 세금 내면서 성별 때문에 받지 못한다면 불공평하지 않느냐’라고 했다가 들은 것이었고, 이자스민 건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단순히 루머들과 확대해석에 대해 반박하는 말을 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졌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 `종북’

 딱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인용해서 한 말도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이야기하면서 사용했던 논리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와 인권에 기초한 논리였다. 내가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는 보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종북’ 소리를 들었던 이유는, 내가 옹호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상’에서 벗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종북이라는 말이 좌우,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클 것이다.

 ‘종북’이라는 말은 정말 편리한 말이다. 일단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게 사용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종북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느라 최초의 논의와 논쟁 구도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육두문자와 분노로 점철된 진흙탕 싸움이 이어진다. 그런데, ‘종북’은 그 사람이 실제로 주체사상과 김씨 일가를 신봉하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반대자(특히 정치적인 사안이나 안보, 군에 관련된 문제는 효과 100%다)들을 철저한 빨갱이나 막스주의자, 복지만능론자로 둔갑시킨다. 낙인찍힌 사람들의 의견은 그 자체의 타당성이나 효율성으로 평가되지 않고, 다수에 의해 헛소리로 치부되거나 조롱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대안이 존재할 가능성을 비주류, 적이라고 배척하는 태도는 창의적이고 능률적인 방식이 아닌 그전의 낡은 방식과 제도로 돌아가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고, 해결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사라지다 형태를 바꿔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국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종북 세력이야 말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당시 유가족에 대한 정부의 태도, 성소수자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종교인, 그리고 유상급식 전환에 분노한 학부모에 대한 경남도청의 반응을 볼 때 우리는 이들이 말하는 종북 프레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종북이라면 진작 한국은 적화통일되지 않았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의 여지와 함께.



오염된 방벽에 균열을 내자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은 우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가 외부 상황과 국내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우물은 물이 오염되거나 사람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방벽을 탄탄하게 지어야 한다. 냉전 체재 때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종북 프레임은 물을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엉뚱한 사람까지 우물에 처박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종북을 외치는 사람들처럼 방벽을 때려 부수려고 달려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들과 같이 바닥으로 전락하게 될뿐더러, 최악의 경우 물이 오염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공고히 남아있는 종북 프레임을 제거하는 것은 길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나 시민 세력도 실패했는데, 일개 개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하고 좌절한 사람을 많이 봐왔고, 나조차도 아직 그러한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벽이 더 이상 물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고,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힘겨루기에 지치고 절망한 사람들과 함께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무엇을 크게 벌여보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연대를 구성하는 것이 이 갑갑하고 단단한 프레임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혜연 <전남대 용봉교지편집위원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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