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앤엠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의 투쟁과 승리

 작년 말, 분명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했던 정부에 속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연말 정산을 하고 보니 세금을 더 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담뱃값이 오른다고 해서 민심이 흉흉하던 터라 분노는 더했다. 그 전 시기엔 땅콩회항 사건으로 슈퍼 갑질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게다가 얼마 전인 올해 2월엔 국무총리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이제는 티브이에서 갑질을 풍자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을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은 익숙하다.

 지금 전국에는 분노의 망령이 떠돈다. 서민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부자와 정치인은 쉽게 돈을 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람들을 분노로 가득 차게 한다. 어차피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우리 사정을 알 길이 전혀 없는, 태어날 때부터 복 받은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생각은 이제 누구나 한다.



무엇이 을들을 반란케 하는가

 그런데 최근 또 다른 논조의 비슷한 기사가 연일 올라온다. 안정적인 정규직과 불안정한 비정규직, 높은 임금을 받는 남성과 저임금을 받는 여성, 철밥통을 가졌다는 장년과 실업 중인 청년을 비교하고 대립시키는 기사들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들은 저 멀리 비행기를 회항시킨 재벌 뿐 아니라, 우리 옆의 이웃, 가족들도 내 밥그릇을 뺏어가는 분노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만큼 분노의 망령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분노의 망령에 지배당한 사람들의 감정은 분노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한탄에 가깝다. 자세히 보면 분노의 뒤에 항상 ‘우리가 그만큼 힘들다’는 한탄이 빠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말할 때의 근거도, 답이 없는 대한민국을 떠나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근거도 모두 현실에 대한 한탄일 뿐이다. 비리 정치인과 무개념 기업인에 대한 분노는 포장일 뿐인 것이다. 아마 서민의 현실이 답답하거나 막막하지 않았다면 땅콩회항도 그저 철없는 부자 한 명의 실수라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를 가장해서 한탄을 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는 표현이 맞다. 연일 올라오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한 기사와 텅텅 비어만 가는 지갑, 늘어만 가는 가계부채 규모를 보면 한탄을 넘어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웃과 가족에게 마저 밥그릇을 양보하라고 열 내고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분노하며 감정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선 사람들도 있다. 작년 12월 말, 치열하게 ‘진짜’ 분노의 대상을 상대로 싸운 케이블 방송 씨앤엠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의 싸움에서 분노의 대상은 씨앤엠이라는 원청, 또 그 원청과 하청 모두를 조종하는 MBK와 맥쿼리라는 대주주이고, 이 모든 자본의 불법성을 감시하지 않는 정부기관이다. 이들의 눈에 지금 옆에서 함께 고생하는 정규직, 여성노동자, 장년층은 모두 밥그릇을 뺏어가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할 사람들이다. 도덕적이지 못하다며 비리 정치인과 무개념 기업인에게 화내는 대신 이들은 진짜 책임자를 가려내고 이웃과 가족을 하나로 묶어내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바로 씨앤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서민의 언어다. 즉, 이들의 싸움은 대한민국, 서민의 언어를 알리는 싸움이었다.



씨엔엠 노동자 연대의 `서민의 언어’

 물론 서민의 언어로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109명의 해고자가 노숙농성을 100일 넘게 진행하고, 두 명의 노동자가 서울 한 복판 높은 전광판에 올라 죽을 각오를 하고 50일을 버텨내고 것도 모자라서 단식, 삭발도 했다. 무엇보다 정말 많은 시민단체와 야당의원들이 연대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에 함께 파업까지 해가면서 연대했다. 방송의 공공성을 유지해서 모든 국민들이 양질의 방송을 봐야 하고, 세상 모든 비정규직의 문제의 뒤에 숨은 원청이 이제는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는 요구에 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진짜 분노의 대상을 가려내고 그들의 잘못을 규명하는 서민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가 되어 분노를 넘어 문제를 정말 해결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망령에 시달린다. 대한민국에 답이 없으니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가고 대통령이 모든 원흉이라는 분노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씨앤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분노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분노는 진짜 책임자를 찾아내고 서민끼리 연대하게 하는 희망의 언어로 진화해야 한다. 정말 서민을 힘들게 한 진짜 책임자가 누군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김도원<연세대학교 학회학술네트워크 집행국>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