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29년인 1596년, 김덕령이 고문 끝에 사망한다. ‘역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소란스러운 틈을 타 이몽학과의 반란을 모의한 죄’라고 전해진다.

 김덕령, 그는 처음부터 역적으로 역사의 기록된 인물은 아니었다. 김덕령이 역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진주로 진출해 왜군의 호남 진격을 막아낸 의병장으로서다.



모함으로 죽임 당한 영웅

 그 당시 사람들은 김덕령을 무척 영웅시 했다. 이는 당시 유행한 김덕령 설화에서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제대로 발휘해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김덕령의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김덕령, 그는 정말 역모를 꾀한 죄인이었을까?

 당시 조정은 의병을 관군에 합류하도록 권유할 만큼 전쟁 후 의병의 세력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전쟁 발발 직후 피란을 떠난 조정 대신들과 선조를 바라보는 민심은 예전과 달랐고 스스로 들고 일어선 의병에게 민심이 쏠려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김덕령은 충청지방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돌렸다. 그러나 가는 도중 이몽학이 암살돼 난이 평정돼 김덕령은 다시 군사를 거뒀는데, 이것이 역적을 돕기 위함이었다는 모함을 받게 됐다.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김덕령은 어찌됐든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이몽학의 난이 없었더라도 그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죽임당할 인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먼 과거에서 오늘날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왜 죽어야 했나?’ 계속 묻겠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함하고 탄압했던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 등등. 김덕령 장군때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나라를 사랑한 대가로 죽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왜 죽어야 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는 그랬다’ 식의 답변이 차고도 넘친다. 여기서 끝낼 수 없는 질문이다. 다시 묻고 싶다. 자신의 나라를 왜로부터, 민주주의 탄압세력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이런 질문을 그치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를, 또 우리가 지켜내고자 하는 나라를 위한 참된 애국일 것이라 생각한다.

윤소영 <전남대학교 용봉편집위원회 수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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