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집회인 ‘민중총궐기’가 서울에서 열렸다.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대로, 해당 집회에 관한 이야기가 뜨겁다.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은 ‘집회현장에서의 폭력성’이다. 보수언론은 경찰에 대한 집회 참여자들의 폭력을, 진보언론은 시민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경찰버스 몇대는 집회군중의 분노로 엉망이 되었고, 집회시위에 투입된 의경 몇몇은 부상을 입었다. 많은 시민들이 최루액으로 인해 구토와 기침 및 피부 손상을 입었고, 특히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민중총궐기’는 폴리스라인 앞에서의 소요만을 남기고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위법성 논란, 기준 자체가 틀렸다

 현재 그 합법성의 기준으로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집시법의 기원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의 ‘집회에 관한 임시 조치법’이다. 제 1 공화국·2공화국을 거치면서도 더 나쁘게 고쳐지지 않았던 집시법이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 비로소 개악되었다. 정권이 정한 11개 항목에 해당하는 집회만 할 수 있었으며 그 외에 속하는 집회는 모두 불법이 되었다. 민주정권이라고 불렸던 김대중·노무현 때에도 해당 법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여러 조건들 예를 들면 대사관 근처에서의 집회시위 금지(휴일의 경우 예외)등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조항이 추가 되기도 했다. 즉, 집회시위라는 민주국가에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의사표출의 권리는 군사정권 때 부터 지금까지, 오히려 그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바뀌어 가면서 점차 약화되어 왔다.

 그래서, 현재 집회시위에 참여한 시민들과 경찰들의 ‘위법성’을 쟁점으로 삼는 것은 굉장히 한계적이다. 기준이 되는 집회시위법 자체가 매우 위헌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이나 집회시위 참여 시민을 향한 위법성의 기준이 되는 집시법은 만약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해서 반드시 개선해야만 하는 법이다.



그들은 무엇을 요구했나

 13만 명이라는 대규모의 인원이 한 장소에 모인 상황에서 ’폭력적인 상황의 발생'은 크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독일·미국 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집회시위에서의 폭력적인 상황의 발생은 하나의 현상으로서 짚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대모의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집회시위라는 의견표출을 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단지 폴리스라인 앞에서의 소요를 만들기 위해 집회시위를 하러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에 국민들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 징후들이 왕왕 터졌다. 세월호 참사, 반노동적이라 평가를 받고 있는 노동시장구조개혁, 정치계의 각종 비리사건, 사상 최대 규모의 가계부채, 유의미하게 진전되지 않는 청년 실업률, 높아져만 가는 노인 빈곤율, 자영업자의 부채비율 및 폐업률의 상승,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감의 확대, 각종 자유무역 협정의 기로 등이 그렇다. 굳이 먼길 마다하고 여러 지역에서 서울로 모인 13만 명의 사람들은 점점 더 하루를 살아가기가 팍팍해 지고 있는 한국 사회를 살면서 각자 하고 싶었던, 사회에 남기고 싶었던 말들이 있었으리라. 우리가 가장 반주주의적인 군사정권 때에 탄생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집회시위권리에 관한 집시법을 가지고 시위와 진압의 ‘위법성’을 논하는 동안 그 요구는 그만 잊혀져 버렸다. 백남기 씨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

서단비 <용봉편집위원회 편집장>

mussein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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