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내시경 중 환자를 성추행한 의사, 제자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지도교수, 학과행사에서 후배 여성을 강간한 남자 선배들, 인턴을 성추행한 직장상사. 여성에 대한 성범죄는 거의 매일 언론에서 보도될 만큼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나며 그 유형도 다양하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성추행·성폭력 이외에도 말·행동으로 인한 간접적인 성추행까지 포함한다면 여성은 거의 매순간 위험에 처해있다.

 하지만 조금 어리둥절할 수 있다. 너도나도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명백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어른이 돼서 까지도 올바른 성생활 태도를 심어주려는 교육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조금은 솜방망이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온 사회가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단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왜 이 성범죄들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미친 가해자? `가능성’을 검열하자

 보편적으로 성범죄의 해결방법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기준은 ‘가해자에게 어느 정도의 형량과 벌금을 부여했는가’이다. 가해자가 얼마나 ‘미친’ 사람이며 얼마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는지를 대중들에게 폭로하고 이에 응당한 처벌을 부여했는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처벌이 충분하지 않다고 간주되었을 시에 그 판단을 내린 판사가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비난한다. 미국에서는 사형을 선고했다더라, 여느 나라에서는 최고 형벌을 내렸더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은 자연스레 잊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잊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왜 성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추행’ 혹은 ‘강간’을 떠올릴 때 으슥한 골목길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낯선 여성을 범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범죄의 약 85%는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즉, 함께 속해있으며 활동하는 공동체 내부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가령 대학·직장·교회 등과 같이 말이다.

 이런 공동체 속에서 성범죄가 일어나는 것의 원인으로 ‘가해자의 자기통제력 부족’과 속된 말로 ‘똘끼(?)’를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왜 성추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 될 수는 없다. 이에 꼭 필요한 대답은 평소에 이 공동체가, 이 조직이 평소에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을만한 가능성’을 얼마나 허락하고 있었는지 이다.



성찰없는 해법은 해결 아니다

 공동체 속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친밀성을 나누는 언어와 행동, 허용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사이의 경계, 사람에 대한 평가와 인정의 기준 등과 같은 모든 조직문화에는 여성과 남성간의 권력관계가 스며들어 있다. 일상에서 용인되었던 행동·말·태도 등이 불편하고 억압적인 감정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사건으로 폭발한다. 즉, 공동체 속 성범죄 사건은 남성 중심적 문화의 누적이며, 동시에 이전까지 조직 문화가 허용해 왔던 어떤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건에 대한 해결은 그러한 ‘사건’을 낳을 수밖에 없는 조직 문화에 대한 성찰과 변화와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다시는 성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좁게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넓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성범죄의 ‘가능성’을 검열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가볍게 던지던 말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은 아니었는지, 여성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지는 않았는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행동과 태도를 용인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의식적인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확한 성찰 없는 해결방법은 절대 ‘해결’이 아니며 ‘방치’와 다를 바 없다.

김동영 용봉편집위원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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