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복이 지나고, 여름의 더위는 한층 더해지고 있는 나날 속에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일제히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초·중·고의 방학은 학교마다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최대 한 달을 넘지 못하고 평균 보름 전후 정도로 짧은 기간이지만, ‘방학’은 학생들에게 가뭄속의 단비 같은 반가운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학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른이 되어 방학을 잊어버린 이들은 알지 못했다.



방학식 날 목숨을 끊은 고교생

 19일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같은 날 오전 11시46분께 경기도 모 지역 고교생 A군이 한 복합 상가건물 7층과 8층 사이의 난간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경찰에서는 CCTV를 통해 A군이 홀로 상가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확인했으며,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A군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이날 방학과 함께 1학기 종합 성적표를 배부한 것으로 알려져,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은 우수한 편이었던 A군이 하필이면 방학식과 동시에 성적표를 배부하는 날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 학업에 대한 심각한 스트레스나 성적에 대한 압박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경찰은 이에 대해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물론 A군이 유서를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A군이 정말 학업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학업과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이고도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례가 많았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분명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학업에 대한 압박과 괴로움을 유서로 남겨놓고서, 목숨을 끊는 어린 학생들의 죽음이 기사화 될 때마다 언론을 비롯한 여론은 항상,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 현실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항상 그들에게, 그들의 인생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공부를 부추기고, 사교육을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학업량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동시에 바로 그 ‘공부‘ 때문에 소중한 학생들의 목숨을 잃게 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방송사의 다큐에서 아시아의 학생들과 서양국가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아시아의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는 이유를 물으니, 대부분이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물론 해당 방송사의 의도적인 편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비단 편집 탓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교육과정을 직접 경험해온 우리는 아주 잘 안다.

 언제부터 공부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었을까? 문득 실로 많은 부모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가 그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낳아준 것’이라고 표현하며, 자식을 낳아주고 길러줬으니 자식의 인생에 부모인 자기가 참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공부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공부는 분명 ‘독’이 된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깨우칠 수 있을까.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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