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2016)’를 보고

▲ 영화 ‘서프러제트’ 갈무리.

 누가 감히 메갈리아가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하는가? 급진적이고 과격하다함은 ‘서프러제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거리에서 집단적으로 돌을 던져 가게 유리창을 부수고, 우체통을 폭파시켜 도시의 통신망을 무력화하고, 내각 각료의 별장을 폭탄으로 날려버리고, 성추행하던 공장관리자의 손을 다리미로 지져버리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말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까? 바로 남성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 오랫동안 여성들은 여러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투표권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남성지배적인 질서에서 여성들의 요구는 무시돼왔고 오히려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혀왔다. 그래서 여성들은 전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코 여성의 투표권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서프러제트’의 지도자인 팽크허스트의 저작 제목처럼 “싸우는 여성이 이긴다.”



권리는 싸워야 얻을 수 있음을…

 이와 같은 ‘서프러제트’의 필요성을 계속 확인시켜주는 남성지배적인 현실 속에서 주인공은 여성운동가로 성장한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의 임금은 훨씬 적다. 여성이 모여서 권리를 외치면 방망이와 주먹이 날아온다. 공장에서의 성폭행은 공공연한 비밀처럼 되어있고, 같은 노동자 계급이지만 남성은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현재의 사회 모습과 겹쳐지면서 여전히 페미니즘의 과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인류역사의 오래된 진리를 깨닫고 확인한다. 권리는 분노하고 싸워야 얻을 수 있음을. 그 길은 가시밭길이지만 누군가는 걸어야 함을. 그 길을 함께 걸을 사람들은 반드시 있음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싸워야 함을.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누군가 피와 땀을 쏟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었음을.



새로운 ‘서프러제트’를 위하여

 영화가 끝난 뒤 더 생각해보게 된다. 힘들게 얻어낸 투표권은 과연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을까? 여성들이 모여서 그것은 여성혐오라고 직접 행동에 나설 때, 여전히 남성들은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는 1차원적인 말로 ‘여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부에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허울 좋은 문구로 여성들에게 이중·삼중의 부담을 더욱 전가하면서 그것을 위기관리전략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존재한다. 서프러제트가 끝난 지 100년이 넘는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서프러제트’가 필요하다. 그 고민의 첫 걸음에 이 영화는 분명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위의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남성배우일색인 영화판에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그것도 남성의 시선에서 재구성된 이미지가 아닌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정대성 <전남대 용봉교지 편집위원>

※이 글은 전남대학교 용봉교지 55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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