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관 알바노동자가 여성 알바생의 ‘꾸밈’에 대한 문제를 알렸지만, 당시에는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대학이든, 직장이든 어디에서나 여성이 반드시 꾸미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해내지 못한 여성을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런 반향으로 SNS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탈코르셋(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꾸밈을 하지 않는 실천적 운동)’를 시작하게 된 유저들이나, 유명 뷰티 유튜버의 ‘탈코’선언 등 여성들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뉴스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상황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놓고 내부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지고 있다. ‘탈 코르셋’을 하기 위해 ‘여성성’을 버리는 것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성성’을 버리는 행동이 주체적인 여성이 아닌, 남성과 기계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 등 ‘꾸밈’ 문제에 한정해도 각양각색의 주장과 대립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지금 여성의 현실은

 여성은 무슨 이유로 화장을 해도, 하지않아도 코르셋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이는 여성 개인이 ‘꾸밈’을 중단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직장과 시장의 규칙, 사회와 국가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표들에서 한국 여성들은 20대 초반까지는 미래를 위하여 학교를 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20대 후반기는 신규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거나 노동시장 경력의 초기를 보내는 시기로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취업시장에서 정도의 시기를 보내고 결혼을 해서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 생애시기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양상의 주기를 도표로 그린다면 ‘엠자형 곡선’이 발생하게 되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그 골이 얕아지고 있는 추세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깨지면서 온 가족이 소득노동에 종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는 추세가 되었고, 사회는 여성에게 새로운 ‘여성성’을 부여, 적어도 길들여지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노룻’에 대한 사회적 요구나 표준은 낮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복합적이고 복잡하게 바뀌고 있다. 자녀교육과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그런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수입도 벌어야한다.

제도적 틀 자체가 고통의 요인

 이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많은 여성들이 무기력하게, 혹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체 불평등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편, 여성들의 주체적인 권리, 동일임금, 고용조건, 가사·양육과 같은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나누고 정신적으로 각성한다 해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처럼 청와대나 법원에 청원을 넣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제도적 틀 자체가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지위를 인지하지 못해 오히려 여성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회구조적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탈코르셋’을 둘러싼 갑론을박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탈 코르셋’을 하기 위해 ‘여성성’을 버리는 것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성성’을 버리는 행동이 주체적인 여성이 아닌, 남성과 기계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를 넘어서 여성의 주체적인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소영<페미니즘 동아리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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