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폐해를 뼈저리게 체감하였다. 나치체계는 주입식교육에 기초한 정치적 훈육을 통해 전체주의에 순응하는 인간을 육성하였다. 그 결과 비인간적 학살을 지시하는 상관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를 순순히 따르는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가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 마을 독일 사람들은 인근의 작은 건물(가스실)로 많은 유태인들이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않으며 오직 연기만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종전이후 연합군이 독일 마을 사람들에게 작은 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시설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하였다.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 ‘생각하지 않음’에 빠져버린 결과이다.

 1945년 독일연방국 창립 이래 독일시민들은 전체주의를 강화시키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였고, 이를 방지하는 교육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1976년 뷔르텐베르크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 교육학자, 교사, 시민들이 모여 독일 정치교육에 큰 틀을 결정짓는 합의하였다. (도시 이름을 따서 보이텔스바흐합의라고 불린다.) 정부는 시민들의 합의를 존중하고 교육정책에 반영하여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정치교육체제를 이루어냈다. 보이텔스바흐합의는 크게 세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강제성 금지(교화·주입 금지), 논쟁성 재현 규정, 이해관계 지각의 원칙이다. 강제성 금지는 ‘바람직한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이를 주입하고 학생들의 자립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사, 학생, 학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 역사교과서 내용을 주입하려는 서울 디지텍고 교장과 대구 문명고 교장의 행태를 금지하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의 비극

 논쟁성 재현 규정은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교육현장에서도 논쟁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이념적·정파적·당파적 논쟁들을 학생들이 토론방식으로 수업을 통해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18세 선거권 보장 문제’, ‘국정 한국사 교과서 문제’등 현안들에 대한 논쟁들을 수업시간에 토론방식으로 재현하며 비판적이고 자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해관계 지각의 원칙은 ‘학생들이 특정 정치상황과 자기 자신의 이해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자기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목전의 정치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교육’이다. 국정역사교과서를 강요하는 교장에게 자신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견을 억압하지 말라는 1인 시위를 수행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교육이다.

 독일시민과 정부는 정치적 현안과 그에 따른 논쟁을 교실에서 재현하는 것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그로인한 전체주의 폐해를 방지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다양한 주체들이 논쟁의 현장에서 자율적 판단으로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정하고 타협을 하며 갈등을 조절하는 과정과 그 과정으로 구축된 시스템이다.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 능력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진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그에 따른 논쟁들에 참여하는데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헌법31조4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왜곡·해석하여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해야할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을박탈하고 있다. 전북대 신옥주 교수에 따르면 헌법 31조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헌법5조2항에서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한다’로 표현하며 쿠데타 등을 통한 정치개입의 역사 속에서 헌법침해자 역할을 해왔었던 군인에게 정치개입 금지를 강조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헌법31조4항에서 강조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특정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치우친 가운데 교조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교사가 수업 등 교사의 직무행위 바깥에서 행하는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의 퇴근이후 특정 정당지지 행위가 간접적으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박한다면 현재 교사들이 퇴근이후 특정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반박이 된다. 게다가 헌법7조에 따르면 교사의 기본권 제한은 직무수행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교사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와 함께 기본권의 주체라는 지위를 이중적으로 가지고 있고 전자만을 바탕으로 후자를 모든 생활영역에서 지킬 것을 강조하는 것은 헌법 11조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교육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제약하고 있다. SNS에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기사를 링크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에 기소당하고 벌금형을 받기까지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에 대한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을 정부가 고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정치적 기본권을 금지당하고, 사적 관심의 영역에 대한 관심만을 강요받는 교사가 정치적 현안에 대한 논쟁들을 토론방식으로 교육과정에 적용하는 보이텔스바흐식 교육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로인해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시민교육은 기존의 이론을 주입하는 형태로만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치적 이론과 지식에 밝았으며 그들에 대한 지인들의 평은 하나같이 예의바르고, 성실하며, 똑똑한 모범생이었다는 말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한국 교육체계를 통해 훌륭하다고 검증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서 심판받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김기춘, 우병우, 조인선, 한국의 아이히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여 그들이 대한민국교육기본법 2조를 통해 강조되는 민주시민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이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고 학생들과 함께 사회적 현안에 대한 논쟁을 불편부당한 토론방식으로 만들어나갈 때 사회적 현안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상호주관적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생각하는 인간’,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시민이 양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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