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손아람 작가의 짧은 강연을 듣게 되었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양성평등’이라는 주제로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설득법은 참으로 놀라웠다. 인지도 있는 사람의 입에서 성차별 의식을 바꾸자고 이야기가 된 만큼 시청자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성차별 의식을 점검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봤다.

 최근 일어난 왁싱숍 여성 살해사건을 비롯해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여성들은 강간·살인 등 강력범죄의 대상이 되는 숫자와 비율이 계속 높아져 가고 있다. 국가의 성평등 수준을 계량화해서 나타내는 ‘국가성평등지수’의 안전지표에는 강력범죄 피해자 비율이라고 있는데, 강간·살인 등 흉악범죄의 피해자를 성별로 나눠 유독 여성 피해자가 많다면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하고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음’으로 진단하게 된다. 우연히 죽은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죽었다고 보는 것이다.

 조두순, 유영철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사회 분위기는 흉악범죄의 처벌을 더욱 강력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 강화된 처벌이라고 내놓은 전자발찌제도, 범죄자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취업에서의 불이익 등은 2010년 이후 이런 법·제도의 개선과 강화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과 여성대상 살인 사건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최근 ‘처녀 교사가 값 많이 나간다’는 경북교육감의 발언이 있었다. 2008년 나경원 의원의 ‘1등 예쁜 여자 선생님부터 4등 애 딸인 여자 선생님’의 무려 10년의 계보를 잇는 성차별 발언이었다. 이것은 고작 한 예일 뿐이다.

 지난 대선 후보시절 홍준표 대표의 ‘돼지 발정제’ 논란에 등장한 댓글은 하나같이 ‘그 시절 젊었을 때 치기어린 장난’이라고 했다. 또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며 임신한 여자 선생님에게 성적 판타지를 가졌고 첫 성관계 했던 여자는 ‘공유했던 여자’라 했던 탁현민도 있다.

 의식과 제도, 둘 중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지난 17년간 여성운동을 해오면서 우리 사회는 무슨 일이 생기면 법·제도의 개선, 강화 요구를 먼저 요구한다. 응당 잘못된 법과 제도는 점검되고 바꿔져야 한다. 하지만 가장 힘 빠지는 일은 의식 수준의 변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위와 같은 의식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바꾸는 주체들이었다는 것이다. 건강한 의식은 좋은 제도를 만들어 내고 좋은 제도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

 왁싱숍 여성 살해사건이 ‘또 여성이라서 죽었다’는 생각에 제도보다 훨씬 더 유연하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 의식 혹은 인식의 문제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간다.

 ‘성차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제이자 가장 오래 갈 문제가 될 것인가?’
백희정<광주여성민우회 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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