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강자가 휘두르는 거대한 몽둥이에 맞아온 약자가 있다. 어느 날 참다못한 약자가 가느다란 막대를 휘둘러 강자를 때렸다.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가?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싶어 하는 유혹에 빠진다.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않고 불확실한 상태로 있을 때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강자의 거대한 몽둥이와 약자의 가느다란 막대 모두를 폭력으로 규정하며 모두 똑같이 나쁘다고 비판하고 분노한다. 이해하기도 쉽고 전달하기도 편하다. 몽둥이나 막대기나 모두 폭력이고 폭력은 나쁜 것이므로 둘 다 벌해야 한다는 말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명징한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청와대 청원을 올리고 관련자에 대하여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온갖 분노의 표시로 도배를 한다.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일을 실천한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를 오십보백보라는 속담처럼 동일하게 여기고 동일하게 비판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필자는 옳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에 담긴 맥락을 간과해버린 인식 즉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에 절도에 담긴 맥락(극심한 빈부격차)을 제거해버리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회적 약자들을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현실’로 내몰고 나서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며 비난하고 응징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간과해버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장발장의 절도에서 맥락을 제거하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신상털이하며 그들이 웃었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혜화역에 모여 성 평등 세상을 외치는 시위대들에게 그들이 한 일부 부적절한 발언만을 확대·강조하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무슬림 중에서 일부 극단적인 테러를 자행한 이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예맨에서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무슬림 난민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쌍용차 농성 투쟁에서 구사대와 경찰의 폭압적 진압에 맞서 돌멩이를 던지고, 볼트 새총을 쏘던 노동자들의 폭력만을 부각시키는 이들이 있다. 이처럼 맥락을 제거한 채로 약자들의 폭력을 강자들의 폭력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판할 때 자유는 최소화되고 폭력은 최대화 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노조, 성소수자, 여성, 난민, 청년 등을 두고 벌어지는 문제들에서 ‘오십보백보 인식’이 성인들 못지않게 나타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특히 D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에 있어서 성적지상주의 또는 사립학교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체제라는 구조적 문제를 생각하기보다 특정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분노를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페미니즘운동이 추구하는 성 평등의 메시지보다 일부 부적절하고 자극적인 언행에 집중하며 이를 악으로 규정짓고 그에 대한 분노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난민들의 범죄행위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분노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 경계선 바깥으로 밀려나간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의 구조적 병폐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편의점주와 편의점 알바들 간에 최저임금을 둔 다툼처럼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다 저지르게 되는 소시민들의 도덕적의 일탈만이 전부인 것처럼 알게 된다. 서로를 향해 ‘~충(蟲)’이라는 증오섞인 단어가 입에 배게 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작금의 학교에서 강조되어야할 교육은 폭력은 단호하게 비판하고 거부하되, 폭력들에 내재되어 있던 오십보백보의 차이를 읽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편한 외침과 거친 행위들을 대할 때 비난과 조롱대신 그들의 폭력에 담겨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읽고 그 모순을 해결하는 활동을 통해 폭력을 줄여나가는 지혜를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특정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행위 다음날 오히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캐나다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연대를 강화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실천한 캐나다 시민들의 사례처럼 말이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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