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광주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라는 검찰수사관의 전화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출석을 약속하곤 상념에 잠긴다. 얼마 전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생으로 휴대폰가게에 취직한 지인이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했다. 사업주는 일상적으로 인격을 모욕했고 임금 200만 원을 체불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일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행위다. 나는 지인의 하소연을 묵묵히 듣고 SNS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사업주는 “당신은 현장실습생이라 최저임금을 안 받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업주의 주장은 거짓이다. 지난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 청소년이 주 80시간의 장기간 노동 끝에 쓰러졌다. 그는 현재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 청년들의 죽음 이어져

 교육의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오던 정부는 졸속적으로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명목상 현장실습생이라고 해도 사업장 노동자와 똑같이 일하면 노동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호한다.“ 한사람의 존엄성을 대가로 한 문장이다. 이를 근거로 지인은 체불임금 중 60만원을 돌려받았고 폭행과 모욕은 합의와 함께 증발했다. 실제 체불임금은 200만원이 넘었지만, 민사소송을 진행할 돈도, 60만원을 받지 않고 생활을 이어갈 능력도 없었다.

 사건이 종결되자 사업주는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도 불려갔다. 깊은 무력감을 느꼈으나, 다행히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했던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듣고 마치 가족의 일인 것처럼, 검찰에서 받은 서면을 움켜쥐고 울었다. 현장에는 다음날이었을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가장 슬픈 케이크가 놓여 졌고, 시민들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힘없는 나는 당신입니다.“

 이것이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올해 1월에도 “아빠 콜 수 못 채웠어“라는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유플러스 고객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했던 청소년이 세상을 떠났다. ‘욕받이 부서’라 불릴 정도로 열악하고 잔인했던 감정노동 때문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정규직이 꺼리는 일은 하청노동자에게, 그리고 하청노동자도 꺼리는 일은 값싸고 편리한 현장실습생에게 전가되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었다.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기업은 애초에 없었다. 기업들은 값싸게 일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오직 이윤만을 위해서 실습생을 고용했다. 이것은 사회적 범행이다. 이 세상에서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인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정부는 또 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제주도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했다. 2003년, 2006년, 2012년, 2013년에도 정부는 대책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지독한 망각의 안개가 드리워질 때 쯤 사고는 반복되었고 여론의 압박 속에서 정부는 다시금 그럴듯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다. 지난 2014년 4월16일. 304명의 고귀한 생명의 존엄과 함께 세월호가 깊은 심해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조명탄이 터지는 하늘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했어야할 일들을 하지 않아왔던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우리는 또 한척의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김동규 <광주청년유니온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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