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개월 된 조카는 말이 서툴다. 때문에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비언어적인 반응인 얼굴표정이나 자세,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좋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화났다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도 그녀의 얼굴만 잘 들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흠이 없는 것이 흠이었다’는 올림픽이 끝난 지 일주일. 많은 이야기와 볼 거리를 남겼는데 그 중 올림픽 마지막 쯤에 벌어진 매스 스타트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2명의 한국선수가 출전했고, 은메달을 딴 경기에서 메달 순위권 밖에 있던 17세의 어린 선수의 인터뷰를 기억하는지. 기자는 자신의 희생으로 다른(한국)선수가 메달을 땄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당당하게 ‘희생이 아니라 팀워크’였다며 ‘우리 팀이 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진짜 기분이 좋은 것인가, 좋은 사람치고 너무 무표정에 가까운데? 그가 경기 종료 직후 은메달을 딴 선수와 함께 링크를 돌며 보여준 표정에서도 그의 말처럼 ‘기분 좋은’사람의 표정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주관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전 은메달을 딴 팀추월 경기와 직후 인터뷰 장면을 찾아보았다. 대체로 표정이 없었지만 조금 더 생기 있었다.
 
▲감정과 행동 중 누가 먼저 경험될까
 
 22개월 된 조카는 말이 서툴다. 때문에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비언어적인 반응인 얼굴표정이나 자세,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좋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화났다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도 그녀의 얼굴만 잘 들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고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큰’고기를 주면 반달눈에 콧구멍을 한껏 벌리며 새끼 새 모양의 입을 만든다. 이런 그녀의 표정을 보려고 어른들은 자꾸 그녀에게 ‘꼬기~ 꼬기~’하며 유혹을 한다. 누군가의 기분 좋은 표정은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다.

 기분이나 정서는 주관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 경험도 표정이나 자세, 목소리, 음성 등과 같은 ‘신체적인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도 알게 된다. 처음 만난 어떤 사람이 ‘반갑다’고 말했지만 무표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다면 혹은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한다면. 원래 표정이 별로 없고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감정과 행동을 따로 떼어서 경험할 수 있을까. 직장이나 학교와 같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이 느끼는 정서와 다르게 행동해야 할 경우가 있기는 하다.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 한 엄마가 자녀 걱정으로 직장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 그러나 마음이 아이에게로 향한 것은 어쩔 수 없고 마음이 딴 곳에 있게 되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힘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좋은데(감정) 아닌 척해야(행동) 하거나 싫은데(감정) 좋은 척해야(행동)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자신이 경험한 정서와 행동의 일치
 
 그런데 감정과 행동 중 누가 먼저 경험될까. 즉 우리는 행복해서 웃는 걸까, 웃으니까 행복한 걸까. 후자의 경우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볼이 조금 더 상기되는 신체적 각성이 일어나고 이러한 신체 생리적 각성을 발생시킨 ‘웃는’ 행동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즉 생리적 각성과 근육운동이 먼저 일어나고 그와 같은 반응에 이름을 붙인다. 도망가기 때문에 무섭고, 싸우기 때문에 화가 나며,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전자의 경우 행복해서 웃는다고 보는 것은 감정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를테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볼이 상기되는 것은 ‘좋아서’ 그러는 것으로 (인지적)해석되고 행복감을 유발된다고 본다. 하지만 또 다른 이론에서 행동과 정서적 경험은 동시에 독립적으로 유발한다고 본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덤비는 사람을 보면서 신체적 각성을 느낀 다음 공포감에 휩싸이거나 혹은 신체반응에 대한 해석을 통해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며 도망친다고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이론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 없다.

 정서가 어떤 순서로,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느낀대로 행동하며, 행동하는 대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경험하는 정서와 일치하는 행동 반응을 하지 못할 때 ‘보는 사람’은 ‘보여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할 수 있다. ‘큰’고기를 주면 환한 눈웃음을 짓는 그녀처럼, 좋을 때는 좋다고 아닐 때는 아니라고 해보자.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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