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직장인 후배는 요즘 늘어나는 업무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어 한다. 동료직원이 ‘이거 좀 해줘’라며 부탁한 일들이 점차 늘어나서 이제는 마치 ‘내 일’처럼 되었고 상사는 은근슬쩍 자신의 업무를 떠넘겨서 정작 후배가 해야할 일은 뒤로 미루고 소홀히 해서 실수를 하거나 마감을 지키지 못한단다. 그렇다고 누군가 자신에게 ‘이거 한번 해 봐’라고 말했는데 무조건 ‘싫어’ 하는 것도 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는 ‘아니오’인데 정작 입 밖으로는 ‘그래요’가 튀어 나와 자신이 ‘호구’인가 싶어 자괴감마저 든단다.

 당신은 어떤가. 누군가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단칼에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도 상대에게 부탁을 하고 때로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야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승낙하고 후회에 휩싸이거나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거절이 어려운 사람의 ‘호의’에 기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떠넘기기 일쑤이고, 얌체처럼 행동하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아는 데도 말이다. 우리는 왜 싫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거절하지 못하는 심리 기저는 두려움
 
 상대의 요구가 작고 사소해서, 상대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상대와 얼굴 붉히기 싫어서, 상대가 무안해 할까봐, 거절로 인해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의견 대립으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들어주는 것이 나아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서. 웬만한 일에는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거절당해본 적이 많고, 거절당할 때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대체 왜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상대방’이 이기적으로 볼까봐,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다른 사람’과 갈등 상황에 놓여 관계가 깨질 것 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게으르거나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미움을 받거나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싫다’고 거절하지 못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어서 그들의 관심과 인정을 얻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려 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사랑과 인정’욕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누군가로부터의 관심과 존중, 수용을 받고자하는 마음이 결국 다른 사람의 부당한 요구마저도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를 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승인만을 바라게 된다면 결국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아닌 ‘남’이 나의 주인이 되고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처음에는 좋은 의도를 갖고 배려하고자 했던 마음은 후회와 과도한 일로 인한 피로감만 남게 된다. 그러다 결국은 스트레스가 쌓여 극단적으로 상대와의 관계 단절을 감행하게 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는 것을 잘못하는데 그 기저에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 나 아닌 남이 나의 주인?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이해, 존중과 배려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에 해당한다. 이러한 욕구충족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 관심과 사랑은 가장 ‘안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만일 네가 ~~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일 때만 주어진다거나, 정서·신체적 학대나 방임으로 부모로부터 거절을 당했을 때는 제대로 욕구를 충족할 수 없게 된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평생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게 하며, 자기 표현을 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마음에 거절근육을 만드는 것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존재처럼 외부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내부일 수도 있다. 사랑은 ‘나는 이만하면 괜찮다’라는 느낌을 만들고, 남의 인정과 이해를 덜 받아도 괜찮다는 느낌을 만든다. 가끔은 자신에 대해 ‘나는 평균 이상은 한다’라는 긍정적인 자기 확신이 거절을 쉽게 만들기도 한다. 거절하기에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조현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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