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얘기 좀 할까?”에 대처하는 법

 여자 친구가 정색하며 ‘우리 이야기 좀 해’ 하면 너무 힘들다는 남자들의 호소는 이랬다. 일단 무언가 ‘내가 잘못을 한 것’은 같은데 심증만 있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그래서 무조건 ‘내가 전부 다 잘못했다’라고 납작 엎드려 사과부터 하지만, 다시 여자 친구가 ‘무얼 잘못했는지 말해봐’하면 멘붕 상태가 되고 ‘따지고 추궁’이 계속되면 은근 부아가 치밀기도 한단다. 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만 하면 싸우게 된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남자친구는 다짜고짜 ‘미안해’라며 사과부터 한다고. 그래서 ‘무엇’이 미안하냐고 물으면 우물쭈물 아무런 설명 없이 ‘다’ 미안하단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아들 야단치는 잔소리꾼 엄마처럼 느껴져 더 화가 나서 하려던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무엇이 그렇게 미안한지 계속 추궁하게 된다고. 대체 나 모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우리 이야기 좀 할까?’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 기분이 드는가. 그냥 싫은가, 피하고 싶은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가, 지난 시간을 재빨리 돌려보며 ‘왜?’라는 생각이 스쳐지나 가는가. 나의 경우에는 ‘왜’라는 생각과 동시에 막연하지만 약간 불안해진다.

과거 경험상 누군가가 나누자고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빴다. 일이 잘못 되서 지적을 받거나, 그래서 어떻게 살겠냐는 평가까지 받았던 기억들이 많다. 많은 기억들 중에 부정적인 기억만 기억할 수도 있지만, 나는 주로 듣기만하고 제대로 된 변명조차 못했다.

이야기 좀 하자는 것은 어찌보면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고, 들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은 내가 시정하고 조치해야하는 것이고,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 받는 자리가 결코 편한 자리는 아니다. 그러니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방어’적이 되고 ‘선 사과 후 수습’이라는 행동을 취하기도 하고 듣는 자리를 피하기는 등의 대처를 하게 될 수 있다. ‘듣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마음속을 스치는 것에 집중한다.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분명’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 넘겨짚고 의중을 가늠하느라 바쁘다. 게다가 ‘그러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다.

더욱이 상대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에 열중하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방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고, 답답함을 느끼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 이러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자꾸 피하고 싶어질 수 있겠다.

 이야기하자는 상대의 상황이나 그의 성격, 행동 특징, 개인사 등에 관한 정보를 알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다. ‘경청’이 없는 한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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