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관리 차원 비상식적 결정 2가지

▲ 정의석.
한 인물을 통해 인생과 시대를 알아가는 것은 흥미로운 배움이다. 그 인물의 변화가 난관을 거친 후 성장한 이후라면 더 그러하다. 간혹 인물에 대한 호감이 그 인물 자체가 가진 성격과 능력 그리고 업적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투사된 경우가 있다. 그러한 현상은 자신이 가진 불만을 동일시를 통해 쉽게 극복하려 했을 때 발생한다.

한 인물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과 공감을 동시에 가지고 그 인물이 나와 사회에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보람된 일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유시민 작가에 대해 보이는 호기심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원만한 태도를 갖게 하였는가?’이다.

그가 최근에 쓴 글, 토론회, 유튜브방송 등에서 했던 말 등에서 원만함은 일관성이 있게 드러나고 있다. 자신의 의견과 상이하더라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와 같은 수용적 반응을 보이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의 단어들도 상당히 정제되어 마음의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피하거나 완곡하게 표현한다.

진중권 씨와 토론회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진중권 씨의 공격에 대한 평가를 물었을 때 그를 평가하기보다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최대한 존중하며 작별하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그의 날선 비판을 기대한 사람들을 충분히 실망시킬 발언이었다.

‘한겨레21’의 류이근 기자는 ‘노무현은 유시민의 운명이다’(2006.1.9.)에서 한 정치인의 유시민에 대한 언급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한때 정치권에서 노무현은 표현이 거칠 뿐 가슴에 못을 박지 않는다. 유시민은 생각이 다르면 오장육부를 후벼 판다.” 또한 김영춘 의원이 “어떻게 옳은 소리를 해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법을 배웠냐”고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했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반대한 것을 보면 그의 비판이 당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날카롭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원만한 태도를 갖게 했나?”

과거 강골, 싸가지 없는 진보정치인, 노무현의 호위무사 등으로 불리던 그가 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변화의 일부는 그가 우연히 만났던 환경의 압력과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의 개성을 잘 발현했기 때문이라 본다. 자신의 개성을 외면하고 사회적 역할,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진정한 자기와의 분리로 인해 그의 삶은 내적으로 불행해졌을 것이다.

칼 융이 언급했던 ‘페르소나’가 그의 인생을 삼켰을 것이다. 그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의 머리말에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까지 50분 동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독서에 몰입한 내가 자랑스럽다.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온몸으로 번져간다. 돋보기를 접어 넣으며 생각해본다. 그래, 이게 나야.”

그는 그의 저서 곳곳에서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중요한 의사선택의 기준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에게 ‘정의’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초월적 가치로서 즐거움과 자유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듯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진보언론과 보수언론 구별 없이 공격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많이 안타까웠다. 그의 정책을 모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의 강한 비판적 어조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공감에 기반 했다.

언론과 다수의 시민들은 그의 표현이 대통령으로서 가볍다고 비판하였지만, 진솔함과 감수성이 묻어나는 표현들이 참 좋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정치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유사성을 본다. 이광재 의원도 그 중 한 사람이며, 유시민 또한 유사하다.

유시민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에 대한 분류에서 보수주의자는 이기성에 대한 본능에 충실하다면 진보주의자는 이기성을 초월하여 이타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의 진보주의자에 대한 정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가 단순히 일종의 사회적 정의만을 추구하였다면, 그의 ‘싸가지 없는’ 비판은 한계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개인적 안위와 이익을 위해 권력을 탐했을 것이다.

▲ 개인적 안위와 권력욕 사이

그가 경력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2가지 비상식적 선택을 한다. 첫 번째가 독일 유학에서 박사논문을 완성하기 전에 귀국한 것이다. 그는 그의 학위중단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연구원이 되거나, 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경력을 중단한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인으로서 삶을 중단하고 공식적으로 ‘작가’로서 삶을 선언한다.

정치인으로서 삶이 고달플지라도 권력이 주는 수많은 이득을 고려한다면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정치가가 가져야 할 역량으로 “정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는 일”라고 정의하며, “정치활동의 과정이 즐겁지 않았기에 직업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이해찬 대표의 보좌관으로 입문하여 노무현을 거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 요즘 사람들이 의심하는 대통령을 꿈꾸는 것이 단지 꿈만을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권을 떠나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별이 아니더라도 그는 자신의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정치를 떠났으리라 본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노무현 트라우마’(한국일보 유시민의 ‘노무현 트라우마’, 2019.9.30.)이나 ‘신경증’에 걸렸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는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정확한 평가도 아니다. 그는 정치라고 하는 전쟁터에 남기에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가 정치인으로 했던 수많은 성취보다 정치를 떠나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기에 결코 작지 않은 일이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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