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에 생기가 돈다.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보름여가 지났을 뿐인데, 그 이전과 이후의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잇따라 참패한 뒤 무기력하기만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야 희망이 보이는 것같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언론도 한나라당의 일방독주로 싱겁게 진행될 것같던 차기 대선 레이스에 흥행거리가 생겼다며 호들갑이다.

 사실 이 번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당 대표 후보 가운데 정동영·정세균과 함께 ‘빅3’의 반열에 올라 있기는 했어도 당내 기반이 취약한 그가 1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그의 승리는 당내에서조차 ‘혁명’으로 표현될 만큼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당 일각의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여기에는 호남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역별 득표율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호남, 특히 광주·전남 당원들이 손 대표에게 표를 몰아줬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호남 당원들은 왜 손학규를 선택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분출한 것이다. 호남인들은 민주당 내 대권주자 중 정권교체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손 대표를 지목해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외쳤고, 그의 이런 호소가 민주당의 ‘대주주’인 호남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광주시민들이 영남 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선택해 결국 대선승리를 이끌어냈던 상황과 흡사하다.

 호남인의 이런 선택은 역설적으로 손 대표의 향후 행보에 있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벌써 그런 조짐이 엿보인다. 그는 당 대표가 되자마자 광주를 찾아 시민들에게 “호남이 없으면 민주당도 없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단행한 인사에서도 그는 핵심 당직인 사무총장에 전남 출신 이낙연을 의원을 임명했다.

 지난 주말에도 10·27 재선거 후보를 지원한다며 광주를 찾는 등 취임 2주 만에 두 번 씩이나 호남행 열차를 탔다. 특히 첫 광주 방문에서 “영산강 사업은 4대강과는 다르다”고 말한 대목은 그 역시 ‘호남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대강사업’을 반대하면서도 수질개선이 시급한 영산강에 대해서만큼은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왔던 그 간 당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는 호남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호남의 민주당원들이 손 대표에게 진정 바라는 것은 ‘정권교체’이지, 호남당을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호남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주변에 호남 사람들을 앉히고 무슨 일만 있으면 광주로, 전남으로 달려와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외쳐서는 결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 호남의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무엇보다 호남인들이 그에게 바라는 덕목은 ‘통합’이다. 당내 화합은 물론 ‘공룡’ 보수에 맞설 민주·진보 세력의 단일대오 형성에 그가 앞장서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처럼 ‘사분오열’된 야권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라는 거대여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물론 민노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시민사회까지 모든 개혁·진보 세력을 아우르는 범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우는 데 그가 몸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부르짖었던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올 수 없다. 600만 표가 뭔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얻었던 1200만 표에서 2007년 정동영 후보가 얻은 600만 표를 뺀 수치다. 이를 되찾지 않는 한 정권교체는 요원하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로서, 나아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그의 어깨에 주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 바로 ‘야권통합’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는 여기에 정치인생을 걸어야 한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 당시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면서 “대의를 위해서라면 ‘불쏘시개’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에게 이 말이 필요한 때는 오히려 지금이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한 ‘불쏘시개’ 역할이야말로 지금 그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인 것이다.

오일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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