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줘도 고마운 줄 모릅니다. 해달라면 다 해주는 줄 압니다. 자기 것은 자기 것이고 애인 것도 자기 것입니다. 충고하면 짜증 내고, 돈 많거나 화려한 상대를 기웃거립니다.(중략)… 애인은 참다 못해 몇 번이나 경고했습니다. 광주는 민주당에 마지막 경고를 보냈습니다. 거기서 멈췄습니다.”

 지난 7월28일 치러진 광주 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한 시사잡지 커버스토리의 한 구절이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비민주 야4당 단일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친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호남 정치의 맹주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지역권력을 독점해온 민주당에 대해 “너희들도 잘못하면 떨어져”하고 경고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시 선거는 잡지의 표현 대로 거기까지였다. 민주당과 ‘이별연습’을 했을 뿐 헤어지지는 않았다.



 7·28재보선은 민주당과 ‘이별연습’

 7·28재보선에서 민주당과 호남이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면, 10·27 광주서구청장 재선거는 그 것을 실행에 옮긴 무대였다. 4명이 경쟁한 선거에서 민주당은 보기 좋게 낙선했다. 그냥 떨어진 것도 아니고 ‘뒤에서 2등’의 굴욕을 당했다. 무소속 김종식(37.88%), 국민참여당 서대석(35.38%) 후보가 불과 2%포인트 차의 접전을 벌이는 장면을 민주당 후보(24.03%)는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해야 했다. 민주당엔 충격이었다. 투표율이 낮은 재선거 특성 상 조직력을 앞세운 민주당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참패 탓이다. “텃밭 중의 텃밭이라는 광주에서, 그것도 2등도 아니고 ‘3등 낙선’이라니….” 당 안팎의 탄식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광주 시민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민주당이 느낀 것처럼 지역민들에게도 ‘충격’이었을까? 아니다. 지역민들은 오히려 민주당의 참패를 당연한 결과로 여기는 분위기다. 민주당엔 충격이었을지 몰라도, 사실 이 번 서구청장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측한 광주시민은 별로 없었다.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후보 공천을 잘못한 탓이다. 지난 6·2지방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패했던 인물을 또 다시 당 간판으로 내세운 데 대한 지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불과 4개월 전 지역민들의 심판을 받았던 후보를 다시 내놓고 ‘우리 좀 찍어달라’ 하는 사람들이 어디 제정신입니까?” “민주당은 광주시민을 뭘로 보는 겁니까” “이렇게 오만방자한 민주당을 광주시민이 아니면 누가 혼 내겠습니까?”

 선거 기간 광주시민들이 민주당을 향해 퍼부은 분노의 목소리들이다. 결국 이같은 ‘묻지마 공천’이 수십년 권력 독점에 피로해진 지역민심을 자극, 민주당에 대한 극렬한 ‘심판의 장’으로 나타난 것이 이 번 10·27 광주서구청장 선거인 셈이다.



 ‘묻지마 공천’이 지역민심 자극

 이 번 선거결과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뿌리깊은 폐악인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민주당 입장에서야 억울하고 분하겠지만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지난 87년 대선 이후 고착화된 지역당 구조가 수십년간 대한민국 정치의 발목을 잡아온 사실에 비춰 그렇다. 이 번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오만함을 심판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당보다 인물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 호남 유권자들이 비로소 민주당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영남에서도 읽혔다. 이 번 10·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후보를 낸 영남 지역 4곳 모두 이겼지만, 내용적으로 고전하기는 광주 서구청장 선거와 다를 바 없었다. 경남 의령군수 및 경남·부산 지역 기초의원 선거 모두 비 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선권에 근접한 득표율로 지역 맹주인 한나라당을 위협했다. 영남에서의 이런 선거 결과 역시 비록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탈 지역주의’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이 번 10·27 재보선은 전국 6곳에서 치러진 ‘초미니선거’였다. 하지만 그 결과가 주는 의미는 역대 어느 대선이나 총선 못지 않게 크다. 향후 치러질 대선이나 총선 등에서 ‘지역주의’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이 번 재보선이 그 싹을 틔운 선거로 평가받을 것이다. 정치판의 ‘공정한 사회’는 ‘탈 지역주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10·27 재보선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다.

오일종<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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