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얘기를 하려니 기자 초년 시절 생각이 난다. 90년대 초반 프로야구를 담당하던 때였는데, 해태타이거즈의 전성시대였다. 당시 해태에는 선동렬 김성한 등 걸출한 스타들이 즐비해 타팀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 강했다. 모든 운동경기엔 특정 팀이나 선수를 만나면 힘을 못 쓰는 ‘천적’이 있게 마련인데, 그 시절 삼성에게는 해태가 그런 존재였다. 어느 날 광주구장에서 열렸던 삼성-해태 경기에서도 해태는 삼성을 크게 이겼던 모양이다. “삼성은 해태 ‘밥’인가? ~” 필자는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첫 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가 데스크로부터 혼쭐이 났다.

 “‘밥’이 얼마나 신성한 존재인 줄 모르느냐? 무슨 기자가 이렇게 생각이 없는 것이냐.”

 그랬다. ‘밥’이란 단어는 이처럼 함부로 써도 되는 말이 아니었다. ‘밥이 약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러 먹을거리 가운데 유독 밥을 귀하게 여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밥은 꼭 챙겨 먹거라”고 당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우리네 어머니들은 밥을 먹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도 된다. 어머니 세대 뿐 아니라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하얀 ‘쌀밥’은 쉬 구경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건강을 위해 일부러 잡곡밥을 먹지만, 그 땐 보리나 잡곡을 섞은 밥이 대세였다. 이토록 귀한 ‘밥’을 운동경기에서 강팀에 잡아먹히는 ‘먹잇감’ 정도로 폄하했으니, 그 데스크의 꾸지람은 백번 지당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거린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쌀(밥)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아이들은 밥 대신 빵이나 피자, 라면을 더 많이 먹고 어른들도 되도록이면 밥을 적게 먹으려 한다. 탄수화물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편견 때문이다. 1970년 136.4㎏이던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말 현재 74.0㎏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물론 지금도 밥을 굶는 ‘결식아동’이 많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 쌀은 분명 넘친다. 남아도는 쌀을 보관할 창고가 부족할 지경이다. 쌀값은 곤두박질이다. 80㎏들이 한 가마 기준으로, 2008년 10월 16만2424 원 하던 것이 2년여 만에 13만6000원 대까지 추락했다. 더욱이 올해는 생산량이 크게 줄었음에도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져 농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쌀 생산비를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야적투쟁’은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올해도 어김 없이 전국 곳곳의 관공서 앞에는 벼가 쌓여 있다. 정부 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이 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정부에서는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별 대책을 다 내놓고 있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공정사회’가 화두인 요즘, 농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불공정한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쌀값하락을 막을 대책은 진정 없는 것인가? ‘수요 공급의 원칙’만 들이대자면, 정부가 남는 쌀을 수매해 동해바다에 버리든, 가축사료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귀한 쌀을 그렇게 할 순 없고,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얘기인데 북쪽에 그 답이 있다.

 남쪽엔 쌀이 남아서 걱정이지만 북녘 동포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 해외 언론과 국제기구 등을 통해 비춰지는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다.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특집방송에서 한 탈북 주민의 인터뷰를 빌려 “작년까지는 하루 세 끼 밥을 먹었다면 올핸 그 중 한 끼는 죽을 먹는다”고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전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아시아권 20여 개 국가 중 가장 적다. 그 결과 2004~2006년 사이 영양부족 상태의 인구 비율은 32%로 아시아권에서 가장 높다. 북한 주민 셋 중 한 명은 ‘영양부족’ 상태라는 얘기다.

 이런 북녘 땅에 쌀을 보내는 것은 북한 주민을 위해서도, 국내 쌀값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당장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만 작금의 남북관계가 이를 말린다. 연평도 피격 사건 때문에 “북으로 쌀을 보내자”고 주장하기가 참으로 난감하게 된 것. 그랬다간 ‘역적’ 소리 듣기에 딱 좋은, 그런 사회 분위기다. 이래 저래 농민들 속만 타들어가는 요즘이다.

오일종<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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