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辛卯年) 새해 첫날 무등산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서설(瑞雪)이 내려 산은 온통 새하얀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150만 광주 시민들에게 새해 소원을 빌기엔 눈 덮인 무등산 만한 장소는 없을 터. 혹독한 세밑한파에도 아랑곳않고 시민들의 발길은 새벽부터 산으로 향했다. 증심사 입구는 성탄전야의 충장로를 방불케 했고, 이 곳에서부터 중머리재~장불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하루종일 사람이 가득했다.

 무등산의 설경(雪景)은 황홀했다. ‘순백의 향연’은 사람들의 혼을 빼앗아갔다. 장불재 오르는 길의 ‘눈꽃 터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여기저기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어제’ 죽은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 산행 중 어떤 이가 탄성을 지르다 못해 내뱉은 말이다. 무등산의 ‘비경’ 앞에서,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하루 전 세상과 이별한 사람을 아쉬워하는 이 ‘멘트’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올 한 해 건강하게 해 주고, 우리가 뜻하는 모든 일 다 이뤄지게 해 주소서.”

 눈 덮인 서석대에서 산신령님께 새해 소원을 빈 뒤 원효사~바람재~토끼등을 거쳐 다시 증심사로 내려왔다. 오후 시간인데도 여전히 북적대는 증심사 입구에 낯 익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해 언젠가부터 계속돼온 ‘100만 민란 프로젝트’다. 2012년 대선에서 야권 단일정당, 단일후보를 내세워 민주정권을 다시 찾아오자는 취지의 국민운동이다. 배우 문성근 씨가 대표인 ‘국민의 명령’이란 조직이 이 운동을 이끌고 있다. 운동의 취지는 명료하다. “2012년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야5당이 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년,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남북관계에서의 참담한 역주행에 분노하면서도 다음 선거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백성들이 견디다 못하면 민란을 일으킨다. 지금 이명박 정부 하의 이 나라가 딱 그 상태이니 국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라는 게 문 대표가 이 운동을 ‘민란’으로 규정한 까닭이다.

 새해 들어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민란’이 왜 성공해야 하는지 극명하다. 차기 대선주자 중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30~40%로 부동의 1위다. 반면 손학규 유시민 등 야권 인사들은 이보다 한참 뒤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물론 아직은 야권의 유력한 후보가 부각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런 흐름이 끝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야권이 사분오열된 상태로는 박 전 대표 뒤에 따라붙는 ‘대세론’이란 딱지를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여런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답은 오직 하나, 어떡 하든 2012년 대선 전까지 야권, 즉 민주·개혁 진영의 단일후보를 내세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단일후보를 뛰어넘어 단일정당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2012년보다 올해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총선·대선을 목전에 두고 이런 일을 하기엔 너무 늦다.

 “너 하나 양보하고, 나 하나 내놓는 방식의 조정이 2012년 총선·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정당 사이의 협상으로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2011년 가을까지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모든 정파가 단일정당으로 뭉쳐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 문 대표가 강조하는 2011년의 중요성이다.

 마침 올해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다. 진보 진영의 각 정파가 단일정당 건설에 머리를 맞대기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눈앞의 이해관계를 계산할 필요 없이, 오직 2012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하나의 깃발 아래로 헤쳐모여 할 수 있는, 하늘이 내려준 시간이 바로 2011년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당의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특히 ‘맏형’인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주당이 의석수 만을 믿고 고자세를 유지하는 한 단일정당 건설의 꿈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각 당의 지도자들이여! 당장 `100만 민란’에 동참하라.” 2011년 새해 첫날 무등산이 내린 `국민의 명령’이다.

오일종<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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