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자연의 질서 앞에 꼬리를 내렸다. 어김 없이 대지엔 봄 기운이 가득하다. 머지 않아 꽃소식도 들려올 것이다. 이 즈음 자주 회자되는 고사성어 한 마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다’는 뜻으로 중국 한나라 때 궁녀 ‘왕소군’이 흉노족 왕에게 정략적으로 시집 보내진 뒤 가졌던 심란한 마음을 훗날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노래했던 시의 한 토막이다. 봄이 왔지만 즐거울 수 없는 왕소군의 처지를 비관한 내용인데, 오늘날에도 여러 상황에 곧잘 비유된다.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둔 진보진영이 꼭 그렇다. 진보진영에 봄은 아직 멀었다. 여전히 한겨울이다. 이명박 정부의 연이은 실정으로 정권교체의 호기를 맞았음에도 야권, 즉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바닥권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구제역 대재앙’에, ‘물가 폭탄’에, ‘서민경제 파탄’에 등 돌린 민심을 사로잡을 진보 쪽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와 YTN이 엊그제 현 정부 출범 3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진보진영의 ‘춘래불사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36%로 부동의 1위를 유지한 가운데, 유시민(7.2%) 한명숙(4.4%) 손학규(3.6%) 정동영(2.2%) 등 진보진영 주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도를 다 합쳐도 박 전 대표의 절반도 안되는 참담한 성적표다. 정당지지도 역시 한나라당이 40%를 훌쩍 넘은 반면 민주당(20.4%)과 민주노동당(4.2%), 국민참여당(2.4%) 등 진보성향 정당들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이래서는 내년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정권을 되찾아올 수 없다.

 뭔가 특단의 대책,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진보진영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는 한 정권교체는 요원하다는 얘기다. 조 국 서울대교수는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진보집권플랜> ‘북 콘서트’에 참석, “<진보집권플랜 Ⅱ>는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집권하면 되지 않겠는가”하고 명쾌한 답을 내놨지만, 진보의 집권이 그의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모두가 힘을 합해 ‘공룡’ 보수여당에 대항해도 싸움이 될 듯 말 듯한데, 이리 찢기고 저리 갈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가 있긴 한 걸까? 사실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다. 야권연대, 나아가 민주·진보 세력의 대통합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양대 선거가 있기 전까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현존하는 진보진영 정당과 시민사회 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이들이 ‘진보’라는 깃발을 들고 한나라당과 1대1로 맞붙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시나리오다.

 모두들 그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에 옮길 계기인데, 그 출발점이 다가오는 ‘4·27 재보선’이다. 강원도지사와 전국 4곳의 국회의원 선거 등 ‘미니총선’을 방불케 하는 이 번 선거야말로 야권연대, 나아가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제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그 중에서도 순천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사뭇 엄중하다. 야권 대통합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민주당의 텃밭인 순천에서 단일후보를 내야 하는데, 여기에 민주당의 ‘무공천 카드’가 논의되고 있어서다.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의 안방을 다른 야당에게 내준다면 이는 분명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이 것이 도화선이 돼 내년 대선까지 진보진영 통합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것이란 기대 또한 가져봄 직하다.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정당존립의 근거”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는 ‘원칙론’일 뿐, 지금처럼 비상한 상황에서는 예외가 되어도 무방하다. 많이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미덕이다. 더욱이 그 것이 대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을 터. 민주당은 다른 야당들이 무공천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결단하는 어른스런 자세를 보여야 한다.

 때마침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순천을 양보하는 ‘통큰 결단’을 사실상 굳혔다는 소식도 들린다. 부디 손 대표의 이 결심이 당내 반발을 뚫고 관철되기 바란다. 그가 강조했던 정권교체를 위한 ‘불쏘시개’ 역할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진보진영의 봄 소식이 남녘땅 순천에서 들려오기를 기대해본다.

오일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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