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으로 망설여집니다. 요즘 쓰는 말로 ‘대략난감’ 입니다. ‘국제 과학비즈니스 벨트’(이하 ‘과학벨트’) 얘기입니다. 광주시와 정치권, 지역 언론까지 나서 광주 유치전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영 내키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딴소리’ 했다가 몰매 맞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한 번 해보겠습니다.

 과학벨트가 광주시에 유치되면 향후 20년간 235조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브랜드 가치 상승이 기대된다고 합니다. 특히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에는 3000여 명의 우수 연구인력과 지원인력이 근무한다 하니 고용효과 또한 엄청날 것입니다. 광주시가 내세우는 유치 당위성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첨단과학 산업단지에 과학기술 연구시설이 집적화돼 있어 ‘기초과학-응용기술-산업화’ 실현의 최적지가 바로 광주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낙후된 호남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는 국가균형발전 논리가 더해집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백 번 천 번 지당한 주장이고 논리입니다. 광주·전남에 살고 있는 지역민 누구라도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과학벨트의 경우 그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와 도시들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뭘까요?

 다름 아닌 대통령 공약사업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온 국민에게 충청권에 조성하겠다고 약속을 했던 사업이 바로 국제과학비즈니벨트입니다. 이렇게 약속해서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육성한다는 선거공약을 내건 뒤 그 약속을 지킨 것과 같습니다. 한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해버렸습니다. 그는 지난 1월 온 국민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과학벨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공약을 파기해버린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의 고민이 생깁니다. 제 아무리 과학벨트 욕심이 난다고 이를 환영한다며 박수를 치고 나서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니 지켜야 한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과학벨트 유치전에 목을 매고 있는 광주시의 모양새가 말이 아닙니다. 강운태 시장이 소속된 정당이 어디입니까? 민주당입니다. 한데 그 민주당은 ‘당론’이라며 대통령을 향해 “과학벨트 충청권 공약을 지키라”고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광주에 와서 “호남의 통큰 양보론”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한 집안에서 정 반대의 목소리가 이토록 격렬하게, 장기간 나오고 있으니 민주당도 참 딱합니다. 시쳇말로 ‘콩가루 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주시의 과학벨트 유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주시도 이명박 대통령더러 “선거공약 지키라”고 요구하는 사례들이 몇 있습니다. 동북아상품거래소와 문화컨텐츠 기술연구원(CT) 광주유치 등이 그 것입니다. 과학벨트와 다를 게 없는데, 사뭇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주시에 약속한 것은 지키라 하면서 다른 지역에 약속한 사항은 안 지켜도 된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 固所願)이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孟子)의 공손추 편에 나오는 얘기인데, 감히 청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는 있다는 뜻입니다. 적절한 비교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주시에 있어 ‘과학벨트’가 꼭 그런 경우인 것같습니다. 대통령이 약속을 깼든 어쨌든, 광주시 입장에서는 바라던 바이니 잘 된 것이란 생각도 가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거기까지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벨트를 광주로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지금처럼 온 동네 외치고 다니면서 졸라댈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손학규 대표의 말 대로 ‘통큰 양보’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제 할 말은 다 한 것같으니, 그만 ‘불감청 고소원’의 심정으로 조용히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그 결과 과학벨트 유치에 실패한다 해도 억울해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원래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될 테니까요. 오일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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