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입전형이 한창이던 지난 겨울방학 때 아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그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친아(아빠 친구 아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빠 친구가 두 명 있는데, 아들들이 ‘카이스트(KAIST)’에 합격했다는구나.”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이 말 뒤에 “너희들도 할 수 있겠지?”하는 무언의 압력이 생략돼 있음은 물론이었다.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친구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이자, ‘내 아들도 그래줬으면’ 하는 소망이기도 했다.

 한데 요즘 그 곳에서 들려온 뉴스는 이런 부러움과 소망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올 들어 4명의 재학생이 잇따라 자살한 데 이어 ‘잘 나가는’ 교수 한 명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두뇌집단’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혹여 내 아들이 그 살벌한 집단의 경쟁에서 낙오해 잘못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금세 마음을 지배하고 만다. 엊그제만 해도 아들 카이스트 보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더니…, 어떤 게 진정한 부모의 마음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과학천재’ 소릴 듣고 자랐던 그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서남표 총장 취임 후 몰아붙인 ‘카이스트의 개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인데, 그 요체는 ‘무한경쟁’이다. 남을 딛고 일어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여러 정책 가운데 ‘징벌적 등록금제’가 가장 살벌하다. 학점에 관계없이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주던 장학제도를 없앤 대신 평균학점 3.0 이하 학생에게는 0.01점마다 6만 원 씩의 등록금을 벌금 형태로 부과하는 제도다. 최고 600만 원까지 낸 사람도 있다 하니, 학생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돈도 돈이지만, 성적이 나빠 등록금을 많이 내는 학생들이 입을 마음의 상처가 오죽했을까 싶다. 공부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자존심 강한 그들에게 ‘등록금 징벌’은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을 터.

 ‘서남표 식 카이스트 개혁’을 둘러싼 이같은 논란을 접하면서 장휘국 광주시육감의 교육개혁이 새삼 비교된다. 지난해 11월 사상 첫 ‘진보교육감’이란 깃발을 내걸고 출범한 ‘장휘국호’의 교육개혁 화두는 ‘행복한 학교, 신나는 교실’이다. 경쟁보다는 학력과 인성이 조화로운 학교, 돌봄과 보살핌이 있는 학교,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개혁의지는 취임 후 구체적인 정책으로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줄세우기 교육·과열경쟁의 대명사로 인식돼왔던 ‘외고설립’ 철회한 것이라든지 일제고사·0교시 폐지, 강제적 야간 자율학습 금지, 오후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이 그 것이다.

 장휘국호의 이같은 교육개혁 정책은 그의 야심작인 ‘혁신학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빛고을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5개학교가 지난 3월 첫발을 내딛었는데, ‘카이스트’가 가는 길과 어쩌면 그렇게 정반대의 방향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선의의 경쟁은 하되 함께 공부하고 뛰어 노는 친구들이 있고, 존경하는 선생님과 사랑하는 제자들이 따뜻한 눈빛을 주고 받는 교실문화가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라 한다. 채 반년도 안 됐지만, 냉랭하기만 했던 광주교육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일각에서는 “학생들 놀리는 게 교육개혁이냐”는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실력광주’에 사로잡혀 궤도를 벗어났던 광주교육이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가 더 많다. 다만, 너무 급격한 변화에 불안해하는 학부모들도 있는 만큼 개혁의 속도조절, 그리고 학력신장과 인성교육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해 보이기는 하지만….

 개혁(改革)의 사전적 의미는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다. 뜯어고치는 행위야 같을지 몰라도 결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고치기 전보다 결과가 좋아야 ‘참개혁’이라 할 것이다.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 개혁과 장휘국 교육감의 광주교육 개혁, 둘 중 어떤 것이 진정한 개혁일까?

오일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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