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자리’ 싸움이 부른 비극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섬뜩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처했던 극빈한 시대 상황과 노파에게 품은 앙금을 묘사하는데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존감이 박탈당할 경우 어떤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소설의 소재는 살인 행위에서 ‘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옮겨간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15일 전남 강진군 마량시장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노점상인 김 모 씨가 다른 노점상인 A씨와 다툼을 말리던 농협직원 B씨 등 두 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더 늦기 전에 당시 참극의 현장을 되짚어 보려한다. 소설은 아니지만, 그가 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누구도 질문한 적이 없어서다.

 공구 노점상인 김모 씨는 여느 날처럼 5일장을 찾았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늘 좌판을 펴던 자리에 다른 노점상인이 선점해 있었던 것. 김 씨는 명당으로 꼽히는 그 자리에서 지난 1년 간 영업해왔다. 김 씨가 그 노점상인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리를 허락한 이는 10m 거리를 두고 있던 맞은편 찐빵 노점상인 A 씨였다.

 결국 마주보며 장사해 온 김 씨와 A 씨는 큰 다툼을 벌인다. 거기에서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이틀 뒤, 배달을 가던 김 씨가 다시 A 씨를 만나면서 같은 문제로 싸움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엔 분노를 이기지 못한 김 씨가 배달하던 공구로 A 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어 김 씨는 싸움을 말렸던 농협 직원 B 씨를 쫓아가 살해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전말을 요약해보면, 김 씨는 자신의 자리를 다른 노점상인에 허락한 A 씨에게 분노가 폭발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다는 이유로 농협직원 B 씨까지 살해했다. 분명 김 씨는 억울하게 죽은 두 생명과 이들의 가족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고, 이는 형언하기조차 죄스러운 비극이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김 씨는 한결 같이 자신의 ‘자리’를 주장한다. 노점 ‘자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다. 현행법상 도로점용 허가 대상인 구두수선소 등을 제외하고 모든 노점은 불법. 노점이 ‘자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에는 어떤 법적 근거가 없다.

 김 씨의 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1년간 그 자리에서 장사해왔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이 바로 마주보며 장사해 온 노점상인 A 씨. 그런 A 씨가 김 씨 자리라고 주장하는 장소에 다른 노점상인이 좌판을 펴도록 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노점상인에게 “누구의 허락을 받고 여기서 장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김 씨 자신이 좌판을 펴던 자리에 대해서 확고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대목이다. 다음날까지 이어진 다툼에서 김 씨는 A 씨에게 “내 자리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서도 ‘내 자리’라는 말을 한다. A 씨가 “어떻게 그곳이 당신 자리냐”고 응수하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터졌다.

 극단적인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김 씨와 A 씨 사이에 벌어진 다툼은 이미 기자에게도 익숙한 광경이다. 노점상과 노점상 간, 노점상과 단속반 간, 노점상과 시민 간, 노점상과 상점 간에 ‘자리’ 싸움은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자리를 허가받지 못한 노점상이 항상 그 다툼의 주체다. 도로의 무법자로 여겨지며 단속 대상일 뿐 현재 광주 역시 노점에게 정식 자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김 씨의 분노를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김 씨가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그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사실은 기록하고 싶었다. 허가 받고 정당한 점용료를 낸 노점이라면, 다른 노점상에게 화풀이를 할 이유가 있을까? ‘자리’를 허하는 일, 한 인간으로 인정받는 길인지 모른다.  

김우리 기자ur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