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보고

▲ 영화 `바비’ 캡쳐.
 기독교 신자인 메리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녀의 아들 바비가 ‘동성애’라는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동성애’라는 정신질병을 어서 치료해달라고 말이다.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메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 그의 말씀이 담긴 성경뿐이었다. 당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는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이는 치료할 수 있는 정신질환이라고 주장했다. 굳게 기도하고, 하느님의 윤리에 따라 선량하게 산다면 동성애는 충분히 치료된다고 믿었다.



동성애는 그저 존재하는 것 뿐

 물론 ‘동성을 사랑한다’라는 성적지향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아닐뿐더러, 하느님께서 구원해주시는 죄악도 아니다. 바비는 일부러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적도 없고, 언제나 동성을 사랑했다. 바비는 그저 태어났으며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조차 그의 존재를 부정했을 때, 그는 삶을 포기했다. 고속도로에서 몸을 던졌고 즉사했다.

 메리는 동성애에 대한 여전한 혐오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섞인 복합한 감정을 갖고 우연히 PFLAG(Parents, Families and Friends of Lesbians and Gays; 성소수자 부모, 친구들의 모임)를 찾는다. “하느님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이 바비를 치료하지 않은 이유는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어떤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PFLAG에서 만난 부모들과 목사들이 메리에게 해준 말이다.

 바비의 죽음, 그리고 PFLAG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삶은 180도 변화한다. 혐오로 하느님과 성경을 더럽히지 말라고, 성소수자일 수 있는 당신의 자식이 혐오가 섞인 ‘아멘’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나 해봤냐고. 그녀는 온통 차별로 얼룩져 있는 세상에 부딪혔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들에 저항

 이 영화를 보고 혹자는 그때 비하면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퀴어 퍼레이드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기도 하고, 여여간 혹은 남남간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도 이제는 꽤나 큰 상업영화관에서 상영한다. 다만, 지금의 이 사회,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차별에 부딪히고, 혐오에 맞섰던 메리와 같은 사람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혐오범죄가 만연하고, 그 속에서 상처 받고 죽는 이들도 너무나도 많다. 저항하자. 매순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바비와 같은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바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

김동영 <전남대 용봉편집위원회>

※이 글은 전남대 자치언론 용봉교지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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