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기자가 함께 식사하면 밥값은 누가 낼까? 수년 전 회자했던 우스갯소리다. 당시의 답은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달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바꿔놓은 풍속도다. 법 시행 전 대한민국은 ‘김영란법’ 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게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주 타깃이 된 공무원들은 청사 바깥에서 사람 만나는 것 자체에 극도의 부담감을 토로하는 실정. 관공서 주변 식당들이 폐업 또는 업종 전환에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사립 불문 모든 교직원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된 학교에선 스승의날 학생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조차 ‘위법’이라는 해석에 “사제간 정도 끊어질 판”이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논란 끝에 이 법 적용대상에 포함된 언론계 종사자, 특히 취재 현장에 미치는 영향도 핵폭탄급이다. 취재라는 게 정보 취득이 생명이며, 이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며, 관계 유지는 술·밥을 매개로 돈독해져 왔는데, 이 법 시행 후 이런 만남이 거의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행정청이 전체 기자가 아닌 특정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특혜’ 소지가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 마당. 행정이 ‘김영란법’ 뒤로 숨어 민감하고 껄끄러운 취재를 회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언론의 공적 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엇나간 특권의식 공분… 법에 포함되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안달이 난 건 기자들뿐, 시민적 정서는 “쌤통이다”에 가까워 곤혹스럽다. 최근 만난 한 중앙지 기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자들에 대한 대중의 적나라한 인식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노라고 했다.

 ‘김영란법이 자칫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약하고, 공적 감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이 “기자들 제 몫 지키기” “몽니”라는 등 성토 일색임을 확인하고 난 뒤 반응이다.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 관련 댓글을 찾아봤다. 일부를 옮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제일 아픈 곳이 언론계일 거다. 뭐니뭐니해도 이 법으로 해서 엄청 수입이 확 줄어들 것이니까 . 그동안 많이들 받아먹었을 것이니 한동안 주머니에서 찬바람 일 것이다.”

 “기자가 제일 썩었고, 그다음이 공무원 그리고 교직원 군대 그런 순 아닙니까?”

 “대체 얼마나 얻어먹고 살았으면 제돈 내고 먹을 처지가 되니 식당에 발길을 끊어서 존폐 위기에 몰린답니까? 그동안 제 돈 내고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입니까?”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공무원과 기자 간 접대 문화에 대해 싸늘하다 못해 경멸적인 시선이다. ‘공생’ 명분 속 상대적으로 접대를 더 누린 이들은 펜을 쥔 기자들이었을 터. 이같이 엇나간 특권 의식에 대한 공분이 민간기업인 신문·방송 종사자까지 굳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아 보인다.



더이상 추락 금지…`배수진’을 치다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라 믿지만) 광주드림이 창간한 10여 년 전만 해도 ‘촌지’는 관행이었다. 기존과는 ‘다른’ 신문을 선언하고 탄생한 본지가 당시 제정한 ‘독자에게 드리는 15가지 약속’ 중 5번째 강령이 ‘어떠한 경우에도 촌지를 받지 않겠습니다’고 적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이들 중 촌지를 들이미는 경우가 심심찮았다. 극구 거부하면 상대는 정색하며 말한다. “다른 기자들도 다 받았어요.”

 ‘왜 너희만 깨끗한 척하냐?’는 위선 저격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저흰 못받습니다.” 해당 취재원과 관계가 서먹해지고, ‘차별화’에 따른 타사 기자들 이미지 훼손이 부담스러웠지만, 우리 기자들이 이렇게 선언할 수 있었던 건 예의 ‘독자와의 약속’이라는 강령을 배수진 삼아서다. “이거 받으면 해고됩니다. 저 책임 질겁니까?”라는 협박(?)이 가능했고, 집요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영란법’이 이처럼 공직사회·언론계의 ‘배수진’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강제 규범인 법을 핑계 삼아서라도 유혹의 근원을 차단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다행 아닌가. 모두 당당해질 것이며,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 수행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니, 이렇게라도 국민과 독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시 처음 질문이다. 공무원과 기자가 함께 식사하면 밥값은 누가 낼까? “식당 주인”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김영란법 시대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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