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폴란드발 2만 명이 넘는 여성들의 거리시위가 시작이었다. 당시 폴란드 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은 죽었다”며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전면 낙태 금지법안 의회 통과 반대 운동에 나서, 결국 이를 폐기시켰다. 이날 등장한 여성의 자궁 그림은 중지를 치켜들며 마치 ‘낙태금지법 엿먹어라’를 외치는 것 같았다.

 지금 한국에서도 검은 시위 중이다.



복지부 ‘임신중절시술 처벌’ 개정안

 시위의 발단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22일 입법 예고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의료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리수술 △진료 중 성범죄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사용 등과 함께 ‘임신중절수술’을 시술한 경우가 포함된 것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를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시키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이에 맞서 10월 9일 대한산부인과협회는 보건복지부 개정안에 반대하며 “비도덕적 진료행위에서 ‘인공임신중절’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개정안이 시행되는 11월2일부터 모든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왜 임신중절의 문제만 나오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여성은 늘 배제되어 있는가’다.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권리를 통제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의사들마저 여성의 몸을 볼모로 삼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낙태를 한번 이상 경험한 여성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미혼보다 기혼자들의 낙태 경험이 더 높다는 보고도 있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낙태를 한 여성을 살인마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님에도, 임신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남성은 처벌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여성과 의료인만 처벌을 받는 현행법은 늘 논란이 되어 왔다. 또, 아이를 낳아 키울 사회적 조건은 만들지 않은 채 애만 낳으라고 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피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교육 현실, 늘 원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성적 만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피임을 기피하는 남성들, 경제적 이유로 임신 중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렇듯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때 ‘사회경제적 사유’는 꼭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번 검은 시위의 주요 내용도 ‘임신중지는 처벌하거나, 그 사유를 국가에 증명하고 허가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다. 임신도, 임신중지도, 출산도 삶의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충분한 사회경제적 지원 아래 당사자가 직접 결정해야 할 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신·중절… 당사자가 직접 결정할 일”

 낙태한 여성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국가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가? 60년대 이후 인구 억제 정책, 한센병 환자 강제낙태시술, 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등 생명과 삶을 가장 무시해 온 것은 여성이 아닌 국가였다.

 지금의 낙태죄 국면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의 대립구도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국가가 임산부의 배를 국유화하고 법적 남편이거나 남편이 될 수 있는 남자들에게 개별 여성에 대한 감시와 통제권을 부여하겠다는 발상”이라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말을 빌려보면 국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또 다른 국가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백희정<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