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전 국민적인 반대 여론과 현장역사교사 97%의 ‘한국사’ 교과서 거부 의견에도 정부는 한국사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사립학교법인협의회는 지난 달 30일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을 조속히 이행해달라고 촉구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그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요구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교육 현장 단체로는 처음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기존에 국정화 찬성 입장이던 한국교총이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으니 그런 주장이 나올 만도 하지만 학교를 개인의 사유물 정도로 여기는 이들의 모임을 교육현장 단체라 이름하는 것은 지나치다. 박근혜가 한때 영남대학교 이사장이었다고 해서 교육자라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사립학교 이사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임인 법인협의회는 교육 현장 단체가 아니라 성격상 ‘교육업계의 전경련’이라 보는 게 더 맞을 성 싶다.

 이번 교과서 사태는 2013년에 경험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 때와 여러모로 닮았다. 친일과 독재 미화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사용하게 만들려는 정권의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그렇고, 전국적으로 극히 드물지만 일부 사립학교에서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이런 학교들은 대부분 역사교과서 채택에 법인이나 학교장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광주에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는 한 곳도 없지만 전국적으로는 몇 학교가 있다. 이런 학교들의 수업에서 교학사 교과서는 무슨 짐짝이나 쓰레기 취급당하고 수업은 대부분 교사가 별도로 준비한 인쇄물이나 다른 출판사 교과서, 참고서 등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 사태와 다른 점은 그땐 8종류 중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강압한 것이라면 이번엔 국정교과서 한 가지만 남겨서 선택권을 아애 없앴다는 점이다. 2013년의 실패를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는 학교의 선택권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일부 내용을 수정하면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이번에 공개된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은 내용에서 한 페이지 당 평균 3~4개의 오류가 실렸을 정도여서 교과서라 이름붙일 수도, 수업에서 사용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만약 수많은 논란을 낳은 오류 부분들을 모두 수정한다면 국정교과서를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역사학자들과 현장 역사교사들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국정교과서 내용의 문제는 국정화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검토한 것이지 이를 수정해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역사교과서를 한 종류로 국한해 학생들에게 한 가지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의 국정교과서 채택 시도는 사립학교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이미 친일독재미화교과서로 국민적 탄핵을 받은 교과서, 박정희시대의 독재로 돌아가겠다는 유신회귀 교과서를 살려보겠다는 행위나 다름없다. 또한 학교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정해져야할 학교교육과정에 학교법인이 관여해서도 안 되며, 교과서 채택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

 고등학교는 의무무상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교과서 구입과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의 권한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과서 주문은 구매자인 학부모의 몫이다. 다만 학교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대행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부 사립학교에서 국민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의사를 묻지 않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일괄로 미리 주문하는 것은 월권적 행정행위가 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사 교과서 주문을 모두 거부해 국민적 저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현재의 국정교과서는 아무리 강제한다고 해도 2017년 1년을 넘길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정치 지형이 변화 등 다양한 정치적 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에 굳이 혼란을 자초할 ‘한국사’ 교과를 2017년 고 1학생들이 배우지 않아도 되므로 2학년 이후에 배우도록 학교 교육과정 편성을 변경하면 된다.

 광주 사립고등학교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김재옥<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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