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사는 이들로부터 봄소식들이 올라온다.

 질긴 겨울을 이기고 꽃들이 피고, 새싹들도 제철에 맞춰 올라왔다는 소식들이 반갑다. 나라의 절망스런 정국을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이 땅의 봄이다.

 우수 지나면 들판에 따순 햇살에 모람모람 아지랑이 오르겠다. 그 무렵엔 나라의 걱정도 말끔히 정리되겠지. 그 날이 오면 아내와 함께 들판에 햇쑥과 달래와 냉이를 캐러 나가봐야겠다. 비정상의 나날들을 견디며, 평범한 소소한 일상의 삶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겼다. 태어나고, 죽고, 숨쉬고, 맘껏 꿈꿀 수 있고, 당당하게 일하고,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잠들고, 눈치 보지 않고 일생을 누리다 가는 모든 것이 보장되고 지켜질 수 있는 나라가 얼른 회복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자기존재감을 깨닫는 것도 필요하겠다.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살아가는데 우리 스스로 발등을 찍는 우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다짐해 본다.



수천년 우리땅 적응 농약 없이 재배

 지난 주 광산구청 7층 대회의실에는 전국에서 토종 씨앗들을 지키는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이들이 모였다. 남부지방에 큰 눈이 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길을 달려오신 이들이 씨오쟁이를 품고와 토종 씨앗나눔을 했다.

 이번 씨앗나눔 행사를 주도한 곡성 농부 변현단 님은 “씨앗으로 얽힌 삶과 사회에 대한 철학 없이 그저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토종씨앗’의 단편적 사고에 분개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이번 행사는 ‘씨앗’이 의미하는 화두를 던졌던 것도 크다고 보았다.

 그는 종자회사에서 쉽게 사서 심던 것들이 정답이 아님을 환기시켰다. “토종씨앗은 수 천년동안 우리 토양과 기후에 적응을 해온 맞춤형 우리 씨앗”이며 “우리 땅에 적응했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해 화학비료나, 독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길러낼 수 있어 토양과 환경을 지키고, 생산자인 농부와 소비자를 지키는 일거양득의 소중한 일”임을 이야기 했다.

 눈길을 뚫고 강원도와 경북 봉화 서울과 경기도 전북과 순천과 장흥에서 온 150여 명의 농부들이 가져온 씨앗들을 보며 감동스러웠다. 국가에서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 농부들이 스스로 나서서 한 일들이다. 농부들을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푸른 기와집에서 똬리 틀고 뻣대고 앉아있는 나랏님에 비할까.

 이번에 나온 씨앗들 속에 ‘앉은뱅이 밀’이 있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백남기 선생님이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함께하실 때, 손수 수소문해서 ‘앉은뱅이 밀’ 구해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최강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님으로부터 전해들은 것도 좋았다. 백남기 선생님 같은 이름 없는 참농부들이 계셔서 이런 귀한 씨앗들이 지켜져 왔을 것이다.

 우리밀도 콩도 우리 것들임에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싶다. 무와 배추, 상추, 아욱, 호박, 가지, 박과 동이 등등…. 이름도 못 들어본 씨앗들이 넘쳐났다. 이 땅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 초등학교에서라도 토종씨앗 공부를 해보도록 하면 좋겠다.



농부 150여 명이 가져온 씨앗들

 이번 씨앗 나눔 행사는 광주전남귀농학교와 이 지역 14개 단체가 포함 된 광주도시농업시민협의회도 힘을 보탰다. 그날 씨앗들도 광주의 도시농부들도 나누어서 갔다. 기후변화 시대의 최대 피해자인 도시가 그 씨앗들을 제대로 품어낼지 미지수다.

 이번에 전시된 500여 점 중 350점을 나눴다. 볍씨 50여 종, 작물씨앗이 300종, 농민들을 위한 40종이 필요한 농부들에게 고루 돌아갔다. 대대로 이 땅에 가꾸고 전한 토종씨앗들을 건사하고 모아 보전하고 나누어서 증식해 ‘종자주권’을 지키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일들이겠다 싶어 눈물이 났다.

 토종씨앗들의 힘을 믿고 해보라는 격려 말씀에 고무되어서 아욱 씨앗을 조금 나눠 왔다.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1997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는 지역의 의제가 올해로 5차의제가 작성되어 5년간 시행된다. 지속가능한 도시 광주의 고민들이 ‘UN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을 위한 광주 5차의제’다. 17개 의제들 속에 도시농업도 들어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 광주를 위해서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도시농업’이 스스로 땀을 흘리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활동으로 각박한 도시민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음을 본 것이다. 시민들이 누구나 손쉽게 참여하여 공동체 의식을 찾아가며 신선한 먹거리도 기대해볼 수 있는 의제라 더욱 기대가 크다.

 이 활동 속에 이런 토종씨앗운동도 더해져서 광주만의 도시농업 활동들이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광주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기위한 고민들이 많다. 맑은 물이 흐르는 물순환 도시, 앞산뒷산이 함께하는 도시숲, 바람길이 통하는 시원한 도시, 유해화학물질에서 안전한 도시, 생활 속의 자원순환, 지속가능한 녹색경제, 에너지 전환도시,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 더불어 자립하는 복지공동체, 더불어 나누는 광주공동체, 다양성을 존중하는 평등공동체, 환경과 사람을 살리는 녹색건강, 보행자를 배려하는 인간중심 교통 환경, 이웃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 공동체 기반의 사람중심 주거환경,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지속가능발전교육 등 기후변화시대를 슬기롭게 넘어가는 5차의제 활동들이 벌써부터 꿈틀거린다.

 오는 2월23일에 있을 5차의제 선포식과 함께, ‘시민이 함께하는 도시농업’ 의제로부터 시작되고, 삭막한 도시공간을 텃밭들을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숨통을 열어주기를 꿈꿔본다.

김경일<광주광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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