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1776년,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의 첫 일성이 이랬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넣은 노론 벽파 세력은 기겁했을 터. ‘아버지의 원수’를 거론했음이니, 복수의 피바람 예감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진 않았다. 정조는 자신의 재임시 아버지의 죽음을 재론하지 않았고, 연루자를 단죄하지도 않았다. 사도세자 추승을 경계한 할아버지(영조)의 ‘유지’가 운신의 폭을 좁혔을 수 있다. 전략적인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노론 벽파는 여전히 국정의 중심, 이들과 대결로 일관해선 국정이 순탄할 리 없었을 게다. 그는 복수 대신 탕평으로 나아갔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을 비롯해 소론, 남인 등 각 정파에서 골고루 인물을 등용한 것이다.



지난 정권의 공과 과 모두 살펴라

 탄핵 당한 전임 대통령,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이를 숨기지 않았다. 재임시 그는 아버지의 추승과 기념사업에 노골적으로 매달렸다.

 박정희는 민중을 무력으로 억누르며 공화정을 무력화한 사실상의 왕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시 행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중심처에 군림하는 왕, 장관·참모 그리고 국민은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인물, 세력은 철저히 탄압한 분열의 리더였다.

 남북 화해의 통로 개성공단을 단칼에 폐쇄하고, 격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사드 배치·한일위안부 협상을 독단으로 결정한 독재자였다. 아버지 시대의 권위주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아버지처럼, 딸 역시 국민에게 버림받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선출된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였고, 친구다.

 선거 후 이튿날인 10일 바로 직무를 시작한 문 대통령의 행보가 ‘친구’와 닮았다는 평가다.

 자택을 떠날 때, 청와대에 입성할 때 인근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셀카도 찍는 등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특히 그랬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야당 대표를 찾아가 무릎을 맞대고 협치를 강조한 것도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낮은 자세로 경청하는 소통의 리더십,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게된 지도자상이다.

 인사 역시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비법조인 출신 민정수석, 여성 정무수석, 50대 초반 비서실장 임명 등이 특히 그렇다.

 소통과 쇄신,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해온 새정부의 국정 철학에 걸맞는 행보로 읽힌다.

 불안함도 있다. 파격은 안정감과 반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어서다.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떨쳐버리지 못했던 우려가 이와 비슷했다.



“이젠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싶다”

 전임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딛고 출발한 새 정권이다. 지도자의 실패가 국가의 운명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절감한 상황에서 선출된 새로운 리더다.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국민적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문재인 정부다. 지난 정권의 공과 과를 잘 살펴야 이같은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게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기’가 돼선 안된다. 과거에 집착하면 분풀이 정치로 점철될 수 있다. 이는 권력자 개인의 욕구 해소는 될지언정 국민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혼란과 분열의 단초에 불과하다.

 통합의 리더십을 주문한다. 분노를 억누르고 국정에 매진한 정조를 떠올려봄직하다. 지난 정권의 ‘과’는 인정하지 않고 ‘공’만 우기다가 몰락한 후계자, 박근혜의 전철을 밟아선 안될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일 야당 순회 방문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전체를 놓고 성찰의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다짐이 흐트러지지 않길 기대한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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