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꽂이여!…’ <이하 생략>

 `잠들지 않는 남도’, 해방 이후 정부 수립, 한국전쟁에 이르는 7년여 동안 제주도민 1만 여명이 희생된 4.3항쟁을 소재로 한 노래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결코 씻어지지 않는 붉은 피가 스며있음을 이 노래는 순간순간 각인시켜준다.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이하 생략>

 `이 산하에’선 봉건주의 타파·외세 배격 깃발 들고 봉기한 동학혁명의 패퇴가 서늘하다. 농민군 2만여 명이 관군·일본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도륙당한 충청도 공주 인근 우금치에 서린 역사적 한을 결코 잊을 수 없게 하는 노래다.



민중가요, 저항과 삶의 노래

 노래가 역사요, 정신이다. 사회 변혁을 목적으로 한 민중가요는 특히 더 그렇다. 해서 저항의 노래이고, 삶의 노래이다.

 `광주’는 특히 노래가 많다. 역사적 아픔과 굴곡이 많았던 도시, 저항과 삶도 노래의 토대가 된 것이다.

 대표곡 중 하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곡은 1980년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폭도로 매도하고 무력 진압한 2년 뒤인 1982년 탄생했다. 당시 황석영 선생의 집이 있던 북구 운암동에서 `빛의 결혼식’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녹음된 테이프가 500개. 여기에 `임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의 노래’가 실렸다. 이게 서울의 대학가에 뿌려졌고,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의 아픔이 있는 국내외 모든 투쟁 현장으로 퍼진 저항가요 1호가 됐다.

 이같이 전설 같은 탄생 스토리는 이젠 전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바, 단지 이해가 안되는 건 박근혜 정권이 왜 이토록 이 노래를 싫어했는지다.

 작사가인 황석영 선생의 방북 이력과 잇대 김일성 찬양곡이라는 말도 안되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80·90년대 집권세력을 상대로 한 집회 현장에서 숱하게 불린 탓에, “반정부적”라는 거부감이 컸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찌됐든 박근혜 정권은 임기 내내 정부 주도 기념식에서 “제창은 안된다”며 이 노래를 막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원없이 불렀다

 민중가수 김원중은 몇년 전 `노래에 담긴 5·18정신’이라는 강연에서 `노래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막았던 세력은 이같은 변화를 두려워했음인가. 하지만 노래는 흥이 있어서 지치지 않는 투쟁의 동력이다.

 박근혜 4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광주’와 전 정권과의 갈등은 사회 변혁과 퇴행 세력간 투쟁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곤 마침내 끝났다. 광주가 투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원없이 부를 수 있게 됐다.

 광주의 노래가 세상을 바꾼, 또 다른 드라마가 37주년 5·18기념식장에서 연출됐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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