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는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 지배를 경계하고 비판하였으나, 체계의 논리를 생활세계의 논리로 대체해선 안 된다고 하였다. 행정체계를 생활세계의 대화논리로만 대체할 경우 전시행정, 늑장행정, 비효율 행정 속에 많은 피해와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시상황에 포탄이 날아올 때 누구 지시를 받아서 대응할지 대화로 결정할 수는 없지 않는가! 급식실에서 줄을 서서 밥을 먹을 때마다 누가 먼저 먹을지 그때그때 대화로 합의해서 결정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행정체계의 효율성 논리를 생활세계 대화와 합의의 논리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다만 행정체계 효율성의 목적을 시민들의 상호주관적 토론 속에서 합의된 내용으로 만들어야 할 뿐인 것이다.



“효율성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효율성의 논리를 `만고불변의 악’처럼 비판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행정체계에서 효율성 논리를 제거하고 합의와 담론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시도가 보인다. 누군가가 효율성을 이야기하는 순간 악마 취급을 받게 된다. 더 이상의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오직 소모적 갈등과 배제만이 남을 뿐이다. 이는 광주교육체계에 관한 담론들에서도 나타난다. 교육문제에서 효율성을 언급하는 순간 나쁜 놈이 된다. 신자유주의 전도사 취급을 받는다. 볼드모트를 언급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워낙 효율성의 논리가 현대사회의 모든 존재들을 지배하고 이익증대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버리기에 효율성에 대한 민감한 비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효율성 그 자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효율성을 영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비효율적인 신념만을 고집하다 무너진 조선왕조 양반들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말 의병총대장이 일제와 맞서 한양 총진격 도중 부친상을 당하자 효도의 도리를 다해야한다고 대장 자리를 비우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 총진격 실패를 만들어낸 비효율성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 통폐합 문제에서도 효율성의 논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효율성의 논리만이 통폐합 진행 유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효율성을 제외해서도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 논리를 적대시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통폐합에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공정한 토론의 장에서 상호이해 지향적으로 모두가 비강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절차와 기준을 만들고 그 절차에 따라 합의를 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청, 이해당사자 신뢰회복부터”

 나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내 생각만이 옳다는 폭력적 사고를 경계해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행정 권력은 한 명 한 명의 시민보다 매우 큰 힘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힘과 정보의 비대칭이 극심하다. 따라서 학교통폐합의 문제가 파행으로 이어진 데에는 결국 교육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존재들이 배제당하고 억압당하는 현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상화되어가는 현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학교통폐합과 대안의 효율성을 언급할 때에는 더디고 힘들지라도 이해당사자들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민주적 의사소통의 절차를 구성하여 논의를 이끌었어야 했을 것이다. 시민들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 느낄 수 있는 형식적 공청회가 아닌 시민들과 함께 답을 만들어간다는 실질적인 공청회, 설명회 등을 이루는 노력을 펼쳤어야 했을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학교 통폐합에 있어 원점 재검토를 밝힌 만큼 이제부터라도 꼬이고 꼬인 실타래들의 원인을 찾아 민주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다. 특히 이해당사들에게 쌓인 불신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할 것이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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